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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기행] 70년 전통 동해 맛집 냉면권가(冷麵權家)

(동해=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심은하와 이성재가 주연한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남녀의 동거를 모티브로 한 영화다.

최근 한 신문사 영화담당 기자로부터 냉면과 통닭을 함께 판매하는 동해의 냉면 전문점 이야기를 들었다. 냉면과 통닭이 한 식탁에 나온다는 것이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음식의 조화가 궁금했다.

통닭과 냉면의 조화 [사진/성연재 기자]

통닭과 냉면의 조화 [사진/성연재 기자]

◇ 냉면 반죽 30초의 비밀

동해시 천곡동에 자리 잡은 냉면권가(冷麵權家)는 할머니와 아버지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권영한 씨가 70년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냉면 전문식당이다.

평양에서 1937년 제일면옥을 차린 할머니와 1953년 영월에서 상동 제일면옥을 차린 아버지에 이어 권씨는 1975년 삼척시 도계에서 뚱보냉면을 운영하다 몇 년 전 동해로 이사를 왔다.

인사를 한 뒤 양해를 구하고 주방 내부로 들어갔더니 권씨가 큼지막한 손으로 직접 메밀 반죽을 한다.

뜨거운 물을 흰 가루에 살짝 뿌리는가 싶었는데 순식간에 반죽이 만들어졌다.
반죽하는 시간은 짧았다. 약 30초.

면 뽑는 기계로 반죽을 넣었는데 순식간에 면이 뽑혀 펄펄 끓는 물 위로 떨어진다. 면은 뜨거운 물 위를 잠시 헤엄치는가 싶더니 놋쇠 그릇으로 옮겨진다. 그 위로 차가운 육수가 뿌려졌다.

메밀을 깎는 과정을 설명하는 권영한 사장 [사진/성연재 기자]

메밀을 깎는 과정을 설명하는 권영한 사장 [사진/성연재 기자]

평양지방의 향토음식인 평양냉면은 메밀가루를 반죽해 찬 육수에 말아 먹는 음식이다. 메밀 순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맛과 점도가 달라진다.

주인 권씨는 "반죽을 하는 데는 정확하게 30초가 소요된다"면서 "물의 양을 잘못 재거나 하면 면의 찰기와 맛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많은 손님이 오더라도 한그릇 한그릇 직접 반죽을 한다고 한다.

냉면을 반죽하는 권영한 사장 [사진/성연재 기자]

냉면을 반죽하는 권영한 사장 [사진/성연재 기자]

◇ 평양냉면은 사람의 간섭을 최소화, 함흥냉면은 극대화

미리 전화로 주문해둔 덕분에 도착하자마자 통닭과 함께 평양냉면, 함흥냉면, 온면이 배달돼 나왔다.

평양냉면은 특히 육수가 깔끔하다. 종업원에게 물어보니 사태를 끓인 육수에 동치미를 섞은 것이라 한다. 면은 70% 메밀에 30% 전분이라고 했다.

심심한 맛은 비슷했지만 뒷맛이 진한 것이 서울지역에서 맛보던 평양냉면과는 또 다른 맛을 전해준다.

메밀을 탈피시킨 뒤 나온 알곡의 겉을 깎으면 핵이 나오는데 이 부분만을 가지고 제분을 한다.

그렇게 하면 부드럽지만, 메밀 특유의 거친 맛은 간직할 수 있다. 일본 에도시대에서 유래한 제분 방식으로, 이를 사라시나(更科)라고 한다.

뜨거운 물에서 익는 냉면 [사진/성연재 기자]뜨거운 물에서 익는 냉면 [사진/성연재 기자]

메밀은 도정을 많이 할수록 흰색을 띠며, 목 넘김이 부드럽고 흰색에 가까워진다. 흔히 보는 검은색 메밀은 덜 깎인 것이라 보면 된다.

주인 권씨는 "평양냉면은 자연과 가까운 맛으로, 사람의 간섭을 최소화한다"고 표현했다. 재료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빨갛게 양념이 된 함흥냉면도 맛났다. 함흥지역에서 만들어 먹던 함흥냉면은 국수에 생선회를 얹어 만든 비빔국수다.

권씨에 따르면 함흥냉면은 '사람의 간섭을 극대화'한다고 한다.

함흥냉면은 전분으로 만들기 때문에 면 자체는 특별한 맛을 내기 어려워 양념으로 맛을 낸다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온면이었는데, 그냥 먹으니 큰 느낌이 없이 심심했다. 파김치를 얹어 먹어보라는 조언에 따르니 새로운 맛의 세계가 열렸다. 얼큰한 쇠고기 국물 맛이 났다. 온면도 역시 메밀을 사용한다.

함흥냉면과 평양냉면(오른쪽) [사진/성연재 기자]

함흥냉면과 평양냉면(오른쪽) [사진/성연재 기자]

◇ 광부의 애환 깃든 통닭 메뉴

다른 냉면집과 크게 다른 점은 통닭이었다. 통닭은 여느 곳에서 판매하는 통닭과 비교해 신선도와 양에서 우수했다.

오븐에서 220도로 잘 구워진 통닭을 냉면과 함께 먹어보니 통닭의 고소함과 냉면의 시원함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특이한 경험이었다. 특히 통닭 껍질 맛이 냉면과 잘 어울렸다.

왜 냉면집에서 통닭을 파는지 물었다.

권씨는 "도계 쪽에서 오랜 세월 냉면집을 하다 보니 광부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육류가 닭고기였다"면서 "광부들의 별미로 자리 잡은 통닭을 메뉴에서 뺄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맛이 이렇게 좋은데 다른 지역에도 식당을 낼 마음이 없느냐는 질문에 권씨는 "서울 등지에서도 체인점을 내자는 등의 제안은 많았지만, 공장식으로 만들어내는 냉면을 만들 생각은 전혀 없었다"라고 말했다.

계산대 앞에 있던 젊은 여성은 맏딸이라고 한다.

육수를 붓는 맏딸 [사진/성연재 기자]

육수를 붓는 맏딸 [사진/성연재 기자]

태백으로 출가했지만 바쁠 때마다 동해로 와 일손을 돕는다. 권씨는 아마도 딸이 4대째 냉면집을 운영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대를 이을 딸 덕분에 통닭과 냉면의 조화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다음에 꼭 들르겠다고 약속하고 나오며 권씨와 악수를 했다. 두툼한 손에서 손님이 올 때마다 반죽한다는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님이 느껴졌다.

'사랑은 풍덩 빠지는 게 아니라 촉촉이 젖는 것'이라는 미술관 옆 동물원 영화의 한 대사가 떠올랐다.

냉면의 깔끔한 맛과 바싹하게 구워진 통닭의 맛은 어느새 촉촉하게 입맛을 적시게 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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