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더스] 캡틴 손흥민의 스피치… 겸손과 품격
누군가에게 머리채를 잡힌다면 기분이 어떨까? 끓어오르는 화를 참고 대화로 갈등을 풀려 드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주장인 손흥민은 그 드문 쪽이다. 2024년 1월 열린 아시안컵 16강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선수들은 황희찬의 멱살을 잡고, 손흥민의 머리채를 움켜쥐기도 했다. 하지만 손흥민은 평정심을 잃지 않았고, 경기를 마친 후에는 사우디 선수를 따뜻하게 안아주기까지 했다. 주장의 품격이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이처럼 손흥민은 선수로서의 실력뿐 아니라 리더십과 인성으로 자주 감동을 준다. 경기를 마친 후 진행하는 인터뷰에서도 그의 인간적 품격을 엿볼 수 있다.지난해 12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2023-2024 시즌 16라운드 경기에서 손흥민은 1골 2도움으로 토트넘이 6경기 만에 무승에서 탈출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당시 토트넘 감독은 주전 스트라이커 해리 케인이 떠난 후 새로운 스트라이커를 찾고 있었다.
그날은 히샤를리송이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선발 출전했고 손흥민은 왼쪽 윙포워드로 나섰지만, 오히려 손흥민이 스트라이커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손흥민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히샤를리송이 박스 안에선 나보다 잘한다"며 슬럼프를 겪고 있던 그를 치켜세웠는데, 이 말에 진행자들이 "쏘니 당신이 바로 감독이 찾는 그 스트라이커에요"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처럼 손흥민은 항상 겸손하며 동료를 칭찬한다. 토트넘이 연승을 거두고 있던 중의 한 인터뷰에서도 진행자가 "주장인 당신을 팬들이 자랑스러워할 겁니다"라고 말하자, 손흥민은 "제가 아니라 모든 선수를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라고 공을 선수 전체로 돌렸다.
그가 주장으로서 권위만 따지지 않고 선수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그의 인터뷰와 발언 등을 통해 스피치의 특징을 살펴보겠다.
우선 상대를 존중한다. 경기에서 이기든 지든 상대 선수에게 결례를 범하지 않는다. 라이벌과의 경기에서 승리하더라도 결코 우쭐하지 않고 상대의 경기력을 낮추는 발언도 하지 않는다. 패하더라도 상대 탓을 하지 않고 문제를 자신으로 돌리는 말을 많이 한다. 단순히 경쟁자로 보지 않고 축구를 사랑하고 같은 일을 하는 동업자로 보고 있어서다.
두 번째, 겸손하게 자신을 표현한다. 말투는 최대한 공손하되 경기력과 관련해서는 명확하고 차분하게 설명할 줄 안다. 무조건 세게 말한다고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차분하게 말을 하고 예의가 있지만 적절한 표현으로 자신감을 나타내는 게 더 효과적이다.
세 번째, 개인보다 우리를 강조한다. 손흥민이 이번 시즌 토트넘의 주장이 된 후의 첫 스피치의 핵심도 '원팀'이었다. 브라이튼 원정에서 이기던 게임을 역전패당한 뒤에도 빌미가 됐던 개인의 책임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리고서는 "우리는 서로 손가락질하면 안 되고 팀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네 번째 특징은 언행일치다. 경기장에서 이기적 플레이를 해놓고 인터뷰 때 말만 그럴싸해선 설득력이 없다. 골을 넣었을 때는 동료를 추어올리고, 슬럼프를 겪는 선수를 안아주는 모습이 한결같다. 특히 골 욕심을 채우려고 무리하게 경기를 운영하지 않고 그 상황에서 최적의 판단으로 다른 선수들과 원팀이 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세계 최고의 축구 리그인 EPL에서 훌륭하게 주장 역할을 해내는 비결이다.
결국 스피치는 인성과 품성에서 나온다. 처음에는 아름다운 말과 수려한 표현으로 사람들을 미혹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품성이 드러나기에 마련이다. 특히 축구 경기에서는 극도의 스트레스와 거친 몸싸움 때문에 극단적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 손흥민은 그럴 때도 품격과 배려를 유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자기 이익과 관련됐거나, 중요한 자리를 맡게 되면 진짜 모습이 나온다. 평상시에는 나를 감추고 포장할 수 있다. 하지만 극한의 압박에 처하거나, 반대로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면 본모습이 나오기에 십상이다.
로마 시대의 철학자이자 수사학자인 키케로는 "스피치의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연설하는 사람에게 있다"고 강조한다. 플라톤은 수사학을 철학과 분리해 비판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을 철학으로 인정했지만, 단순히 기술적인 것에 국한한다고 지적하며 "좋은 스피치는 좋은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그것이 바로 이상적 연설가이다.
키케로가 생각한 이상적 연설가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편협한 특정 분파의 전문지식이 아니라 모든 영역을 바라볼 수 있는 지적 능력이다. 왜냐하면 연설가는 어느 상황에서 어떤 주제로 연설하든 광범위한 분야에 대한 지적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공동체에 대한 의무감이다. 공동체에 대한 참여는 말을 매개로 한다. 리더라면 자신의 이익과 실리보다는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당시 정치적 참여를 꺼리고 사회적 의무를 방기했던 지식인을 비판하는 말이기도 하다.
세 번째 조건은 연설을 효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다. 각각의 연설 내용과 장소, 청중에 따라 알맞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섬세한 주제는 정밀하게, 무거운 주제는 장중하고 숭고하게, 일상적인 주제는 가볍고 부드럽게 조절하는 게 이상적 연설가다.
캡틴 손흥민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우리 팀, 다른 선수를 위한 스피치를 한다. 즉 공동체를 위한 의무감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특히 협업의 스포츠인 축구에서 본인이 돋보이기 위한 플레이만 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또 그는 상황에 맞게 스피치를 한다. 진 경기에서는 냉정하게 전체 플레이를 돌아보고 반성한다. 좋은 결과가 있을 때는 팀 전체로 공을 돌리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상황에 맞는 스피치를 조절하는 능력을 갖춘 셈이다.
손흥민은 주장이 되기 전부터 팀에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 과정과 진심이 지금의 손흥민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스피치는 인성과 품성에서 나온다. 과연 우리는 그런 인성과 품성을 바탕으로 좋은 스피치를 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김은성 KBS 아나운서
ㅡ[연합뉴스]ㅡ2024.08.12
ㅡCopyrights(c)- OTOT-오티오티, 신문" 무단, 전재 배포 금지ㅡ |
메인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