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 논란…표현의 자유 제약"vs"사생활 보호"
미투, 내부고발자 등 공익적 목적 폭로 위축 가능성 ![[디지털스토리] "직장 갑질 폭로했다 고소당했습니다" - 1](https://img6.yna.co.kr/etc/inner/KR/2018/12/04/AKR20181204067100797_11_i_P2.jpg)
(서울=연합뉴스) 박성은 기자 = "사기꾼을 사기꾼이라고 페이스북에 올리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까요?" 지난 6월 한 온라인 사이트에 올라온 글이다. 작성자는 "중고나라에서 사기를 당했다"며 "사기꾼이 수차례 거짓말을 일삼고 일주일 후에야 돈을 돌려받았는데, 너무 괘씸해서 주변에 알리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이 경우 명예훼손죄에 해당할 소지가 높다. 김준환 변호사는 "명예훼손죄는 벌금형이 일반적이지만 죄질, 횟수, 범죄경력 등에 따라 차이가 발생할 수 있어 게시글을 작성하지 않는 게 낫다"라고 설명했다.
![[디지털스토리] "직장 갑질 폭로했다 고소당했습니다" - 2](https://img7.yna.co.kr/etc/inner/KR/2018/12/04/AKR20181204067100797_09_i_P2.jpg)
사실을 말했다 처벌받는 법.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둘러싸고 폐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미투 운동'에 동참한 사람들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역고소를 당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논란이 재점화됐다. 규정 존재만으로 피해자들을 심리적으로 위축시켜 표현의 자유를 제약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 못지않게 개인의 인격권 및 사생활의 자유 역시 보호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사생활 보호법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할 경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해야"…표현의 자유 위배
우리 형법 제307조 제1항, 제2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폭로가 사실이어도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처벌 대상이다. 폭로 내용이 사실이어도 수사기관이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하면 폭로자가 처벌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투 운동뿐만 아니라 부패와 같은 내부고발자 등 공익적 목적의 폭로가 위축될 수 있는 이유다. 미투 운동 초기 당시 가해자들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경우 되레 폭로자가 처벌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었다. 결국 우려는 현실이 됐다. 김 모(31) 씨는 올해 4월 자신의 페이스북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당시 셀레브 대표 임 모씨의 갑질·성폭력을 폭로했다. 임 씨가 직원들에게 욕설과 폭언을 하고 남녀 직원을 모두 룸살롱에 데려가 여직원까지 여성 접대부를 선택하게 했다는 내용이었다. 임 씨는 폭로 이튿날 "회식을 강요하고 욕설·고성으로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준 게 사실이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사과문을 올렸고, 다음날에는 셀레브 대표직에서 사임했다. 하지만 임 씨는 한 달여 뒤인 6월 초에 김 씨를 '허위 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디지털스토리] "직장 갑질 폭로했다 고소당했습니다" - 3](https://img7.yna.co.kr/etc/inner/KR/2018/12/04/AKR20181204067100797_10_i_P2.jpg)
임금체불을 고발한 경우에도 처벌받을 수 있다. 대법원 2004년 판결에 따르면 임금체불을 당한 노동자가 "노동임금 갈취하는 악덕업주 피해자 사장은 각성하라"는 내용이 기재된 피켓을 들고 확성기를 사용해 불특정다수의 행인들에게 알려 유죄판결을 받은 사례가 있다. 지난 4월 현직 변호사, 대학교수 등 330명의 법률가는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를 촉구하는 내용의 법률가 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말한 사실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조항(형법 제310조)이 있으나, 이는 곧 '공익을 위하지 않은 진실은 발설하지 말라'는 것이며 표현의 자유를 공익 목적을 위해 행사하도록 제한하는 것으로써 위헌적이다"라고 말했다. 또 "공익성이란 모호하고 불명확한 개념으로 판단자(판사)에 따라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에서는 유엔 총회 산하의 유엔인권이사회, 인권조약기관인 자유권규약위원회와 여성차별철폐위원회를 포함, 다수의 국제인권기구가 지속해서 한국 정부에 명예훼손 행위에 대한 형사적 처벌을 철폐할 것을 권고해 왔다. 명예훼손을 형법상 범죄로 처벌하는 나라는 드물다.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위스, 일본 등은 사실적시 명예훼손 처벌규정이 있지만 적시된 내용이 사실인 경우 처벌을 면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다.
◇ 사이버명예훼손 1년새 15.1%증가…폐지는 시기상조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는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나온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범죄 가해자를 보호하기도 하지만 범죄 피해자를 보호하기도 한다. 만약 폐지될 경우 개인의 인격권과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는 근거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장 모(54) 씨는 "몇 년 전 이웃 부부가 키우는 자식이 남자가 혼외로 낳은 아이라는 소문이 돈 적이 있었다"며 "결국 해당 소문이 사실인 것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나름 행복한 가정생활을 꾸려가던 부부가 입은 정신적인 피해도 상당했다. 사실이더라도 남들에게 다 밝혀진다면 개인의 사생활 침해가 심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개정 논의와 쟁점'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경우 프라이버시에 대한 확립된 개념 정의나 사생활권 침해를 규율하는 형사처벌 규정이 없고, 민사소송도 활성화돼 있지 않다"며 "제반 여건 개선 없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삭제하는 문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 형법 제310조는 '제307조 제1항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투 등 공익적 목적으로 사실을 말한 사람들이 구제받을 수 있는 장치가 있는 상황에서 무작정 폐지는 섣부르다는 의견이다.
![[디지털스토리] "직장 갑질 폭로했다 고소당했습니다" - 4](https://img6.yna.co.kr/etc/inner/KR/2018/12/04/AKR20181204067100797_08_i_P2.jpg)
특히 한국은 빠른 인터넷 속도로 명예훼손이 단시간에 퍼져나간다. 한번 침해된 명예는 회복하기 어렵다. 피해구제에 대한 법 제도가 있지만 반론과 삭제가 쉽지 않다. 사이버명에훼손은 1년 새 15.1% 늘 정도로 고통받는 사람도 많다. 윤해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사회 부조리에 대한 발전적 고발을 위축시키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면서도 "이를 위해서는 건전한 인터넷 문화가 필요하고 사생활보호법을 별도로 마련하는 등 부수적인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인포그래픽=장미화 인턴기자) junepen@yna.co.kr
<연합뉴스> 2018/12/08 08:00 송고 ㅡCopyright ⓒ OTOT - 오티오티 [신문] 무단전재 배포금지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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