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가해자 피하려고 4년 동안 6번 이사 다녀"
가정폭력범 구속률은 1% 미만…재범률은 9%
법의 오조준…"피해자 보호보단 가정 보호에 방점"
가정폭력, 국가적 책무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서울=연합뉴스) 박성은 기자 = "몇 년 전 남편이 때려 신고했는데 경찰이 '가정의 일'이라며 남편을 격리하지도 않고 돌아갔습니다. 제가 신고했다는 사실에 격분한 남편이 칼을 휘둘러 너무 두려웠어요."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A씨는 한국여성의전화와 상담에서 이렇게 털어놨다. A씨는 신고해도 현재 상황을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무기력감을 겪었다. 그는 "누구도 해결 못 한다. 내가 죽어야 끝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와 유사한 공포를 느끼는 건 A씨 만이 아니다. B씨는 "남편이 내가 운영하는 가게를 부수는 등 난동과 폭력이 심해 경찰에 7번 신고했다"며 "이후 가정폭력으로 구속돼 1개월 감옥생활을 했고 접근금지명령도 받았지만, 폭력이 더 심해지고 빈번해졌다"라고 토로했다. 가정폭력의 비극적 결말은 죽음이다. 한국여성의전화가 2017년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을 분석한 결과, 남편에 살해된 여성은 41명이었다. 살인미수까지 더하면 64명이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사건을 포함하면 해당 숫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게 한국여성의전화의 설명이다. 가정폭력은 매년 증가 추세다. 하지만 제대로 처벌받는 경우는 드물다. 법의 목표가 피해자 안전확보와 가해자 처벌보다는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는 데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폭력 이후에도 가해자와 인연을 끊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 가정폭력 사범 총16만4천20명…구속은 1%도 안돼 지난 22일 오전 4시 45분께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김씨(49)가 이혼한 전처인 C(47) 씨를 수차례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것이다. 피해자의 둘째 딸 김 모(22) 씨는 "과거에도 아버지의 폭행과 협박이 있었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피해 4년 동안 6번이나 이사를 했다"고 전했다. 피해자의 딸인 3자매는 지난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아빠는 절대 심신미약이 아니고 사회와 영원히 격리해야 하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라며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청원했다. 내달 22일 마감을 앞둔 해당 청원은 26일 오전 11시를 기준으로 13만3천831명이 동의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재정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올해 6월까지 검거된 가정폭력 사범은 총 16만4천20명이었다. 피해자 10명 중 7명은 여성이었다. 
구속률은 떨어졌지만, 재범률은 증가했다. 전체 검거자 중 1천632명이 구속돼 0.995%의 구속률을 보였다. 2015년 4.1%였던 재범률은 2016년 3.8%로 소폭 감소했다가 2017년 6.1%, 올해 6월까지 8.9%로 다시 늘어났다. 1997년 가정폭력관련법이 제정되고 수차례 개정과 임시조치 및 피해자보호명령 등 각종 제도가 도입됐지만, 여전히 가정폭력에 대한 사법체계의 대응이 미비하다는 지적이다. 가정폭력은 처벌보다는 가정 보호에 방점이 찍혀있다. 신옥주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6월 '가정폭력방지정책포럼'에서 "가정폭력은 범죄다. 법의 목적이 가정폭력 범죄자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 및 그 가족의 안전에 있어야 하지만 가족의 유지와 회복에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가정폭력을 사적 공간인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경미한 범죄로 이해하는 시각이 투영된 것"이라며 "이러한 시각이 상담 조건부 기소유예제도 등을 통해 가해자 처벌을 어렵게 하고 실효성 있는 처벌을 막는다"고 덧붙였다. 상담 조건부 기소유예제도란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해 상담을 조건으로 기소를 유예하는 것을 의미한다. ◇ 폭력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쉽지 않아 "회사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술을 마신 날에는 남편이 욕설과 폭행을 일삼았어요. 그때마다 이혼하고 싶다가도 애들 때문에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두 명의 장성한 자녀가 있는 정 모(55)씨는 "남편을 신고하고 처벌받으면 폭력이 더 심해질 것 같았다"며 "특히 이혼이라도 하게 되면 나중에 아이들이 이혼가정에서 자랐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웠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가정폭력에 피해자가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례는 적지 않다. 여성가족부의 '2017년 가정폭력 실태와 과제' 보고서를 살펴보면 배우자 폭력에 대한 대응으로 '그냥 있거나, 피했다'는 응답이 74.5%에 달했다. '함께 폭력을 행사하거나 주위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응답은 25.5%였다. 가정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은 더는 견딜 수 없을 때,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을 나오거나 이혼을 시도한다. 하지만 이별 요구에 대한 보복은 끈질기고 집요하다. 
미국의 '위험에 노출된 여성과 아이들' 보고서에 따르면 응급실에 실려 오는 폭력 피해 여성의 75%가 남편과의 이별 통보 이후에 실려 오며 이런 이별 폭행은 이후 최소 2년 동안 지속한다고 보고된 바 있다. 지난 5월에는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고 이혼한 전 아내를 찾아가 행패를 부린 남편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그는 술만 마시면 아내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아 올해 5차례나 신고되고, 폭행과 재물 손괴 등 혐의로 여러 차례 입건됐다. 실제로 가정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에게서 벗어나 이사를 했을 때 가해자가 자신의 주민등록 등본·초본을 떼어볼 수 없도록 하는 열람 제한 신청이 매년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병훈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주민등록 열람 및 등초본 교부 제한을 신청하는 것은 '제발 우리를 찾지 말라'고 생존을 요청하는 소리"라면서 "제한 신청 건수가 늘어나는 것은 그만큼 가정폭력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라고 강조했다. ◇ 가해자 처벌, 피해자 보호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가정폭력이 심각한 범죄라는 점과 가정 내의 문제로만 취급돼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보호를 국가의 책무로 인식하고 보다 적극적인 보호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세종 조선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가정폭력방지정책포럼에서 "지역경찰관들의 제언을 요약해보면 가정폭력사건 처리절차를 명료화, 간소화, 신속화할 필요가 있었다"며 "피해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재범자에 대해서는 삼진아웃제도 도입 등 강력한 제재수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가해자 격리장소와 피해자 보호시설을 확충할 필요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이동환 치안정책연구소 법제개혁팀장은 지난 24일 '젠더 폭력 경찰대응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이라는 발제문에서 "(가정폭력 등) 현장에서 범죄임이 명백할 때는 그렇지 않지만, 범죄에 이르지 않거나 애매한 경우 경찰은 무기력하고 무능한 모습을 보인다"며 "경찰이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인권 침해 우려가 없는 범위 내에서 경찰과 관련한 법령을 개정해 현장에서 위험을 즉시 방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영국 등 주요 국가들은 출동한 경찰이 가정폭력 현장에서 가해자를 체포하거나 퇴거 명령 등을 내리는 방법으로 격리한 후 형사 절차를 진행한다. 또 피해자가 스스로 법원에 민사상 보호 명령을 청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체계를 구축, 피해자 보호의 신속성과 실효성을 확보하는 법체계를 보인다. 정세종 교수는 "현행 가정폭력처벌법은 형사절차(형벌), 가정보호사건(보호처분), 피해자보호명령(민사)로 3원화 돼 있어 법 집행의 실효성을 떨어뜨린다"며 "가정보호사건제도를 폐지하고 형사절차와 민사절차로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옥주 교수는 "가부장적 사회구조 속에서 피해 여성의 신고와 고소가 어려운 만큼 신고 이후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되지 못하는 점은 시정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범죄의 처벌과 피해자 보호를 우선하도록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의 목적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포그래픽=이한나 인턴기자) junepen@yna.co.kr <연합뉴스>2018/10/27 08:00 송고 ㅡCopyright ⓒ 오티오티 - OTOT [신문] 무단전재 배포금지ㅡ
|
메인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