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OT - 오티오티 [신문]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최유진 인턴기자 = 운전자 송 모(36) 씨는 최근 도로에서 마주친 자전거 운전자만 떠올리면 아직도 황당하다. 송 씨는 "왕복 8차선 도로 한복판에서 이어폰을 낀 채 손을 주머니에 넣고 전력 질주하더라"며 "안전 의식이 제대로 박힌 건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자전거 운전자는 헬멧 등 안전 장비는 물론 기본 전조등조차 달지 않았다고 한다.

주말이면 자전거 라이딩이 취미인 박 모(36) 씨는 "동호회원 사이에 자전거 3년 타다 안 다치면 운 좋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고 말한다. 박 씨는 "자전거 전용도로를 주차장처럼 여기며 차를 세운 경우는 부지기수"라며 "자동차 운전자들이 자전거를 거칠게 위협하는 행위도 종종 경험한다"고 말했다.

28일부터 자전거 음주운전이 적발되면 범칙금 3만원을 내야 한다. 안전모 착용도 의무사항이다. 좀처럼 줄지 않는 자전거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서다. 자전거 교통사고는 매년 1만건 넘게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전거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자동차와 자전거 운전자 모두의 경각심과 관련 시설 구축 등이 시급하다고 당부한다.

자전거 사고는 매년 1만 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자전거 교통사고는 1만4천63건이다. 2013년 1만3천316건을 시작으로 2014년 1만6천664건, 2015년 1만7천366건 등 매년 1만건이 넘는 자전거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나 다른 운송 수단과 달리 자전거는 따로 개인 보험을 드는 경우가 드물고, 면허증 발급도 필요 없는 교통수단이기 때문에 실제 사고는 이보다 더 많을 가능성이 있다.

사상자 수도 비슷하다. 2013년 이후 매년 1만3천명 이상 자전거 사고로 다쳤다. 사망자는 매년 200명 이상 발생하고 있다. 2013년 282명, 2014년 283명, 2015년 276명, 2016년 258명, 2017년 265명 등이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자전거 사고로 인해 죽거나 다친 이는 8만명에 육박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과 비교해서도 우리나라의 자전거 승차 중 사망자 수는 많은 편에 속한다. 2015년 기준으로 미국, 일본 등에 이어 5번째다. 272명이다. 인구수가 엇비슷한 스페인에 비해서는 5배 이상 많다.

자전거 교통사고는 활동하기 비교적 편한 계절에 더 발생한다. 경찰청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자전거 운전자가 유발한 교통사고가 가장 자주 발생한 달은 6월(3천391건)로 나타났다. 이어 9월(3천389건), 5월(3천338건) 등의 순이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과 같이 야외 활동이 활발해지는 가을철일수록 자전거 사고가 느는 것을 체감한다"고 말했다.

◇ 불쑥 튀어나오는 자전거에 가슴 철렁

"'자라니' 아시죠? 며칠 전에도 역주행하는 자전거를 아슬아슬하게 피해갔어요."

운전자 한 모(35) 씨는 "자전거가 아무리 유행이라지만 기초적인 교통 법규도 모르고 있는 이들도 많은 것 같다"며 "반대편에서 불쑥 튀어나오거나 교통 신호도 무시하고 단체로 이동하는 자전거족을 보면 울화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자라니'란 자전거 애호가와 고라니의 합성어다. 도로 곳곳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자전거 운전자를 칭하는 신조어다.

이처럼 자전거 이용자가 사고의 가해자인 비율은 매년 증가 추세다. 도로교통공단이 펴낸 '자전거 교통사고 급증 원인 분석과 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자전거 교통사고 중 자전거가 가해자인 비율은 20%에 머물렀다. 이후 매년 증가해 2014년에 들어서는 36%까지 늘었다. 자전거 운전자가 유발한 사고로 발생한 사망자 수도 2016년 113명에서 2017년 126명으로 11.5% 증가했다.

자전거 가해자 3명 중 2명은 안전운전 의무를 지키지 않아 발생했다. 이어 중앙선 침범(10.0%), 신호 위반(7.5%) 등의 순이다.

도로교통공단 측은 "자전거도 엄연히 차에 해당하므로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은 자동차 운전과 같은데 이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족하다"며 "이 때문에 도로교통법이나 안전한 통행 방법을 숙지하지 못해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이번 단속 대상에 포함된 자전거 음주운전 역시 마찬가지다. 대한의학회지가 지난해 9월 발표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자전거 음주운전 경험이 있는 비율은 12.1%로 나타났다. 특히 60대의 경우에는 20%에 달했다.

주말마다 자전거 동호회에서 라이딩을 즐긴다는 호 모(56) 씨는 "모임이 끝나고 다 같이 술과 함께 저녁을 먹고 헤어진다"며 "취했다고 해서 자전거를 끌고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고 말했다.

◇ 주차장이 아니라 자전거 도로잖아요

자동차 운전자들이 교통 약자인 자전거에 대한 인식 부족도 사고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회사원 양 모(32) 씨는 최근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것을 포기했다. 위험에 맞닥뜨린 게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양 씨는 "뒤에 바짝 붙어서 경적을 울리며 위협하는 자동차 운전자는 이제 익숙할 정도"라며 "자전거 도로를 만나더라도 갑자기 끊기는 경우도 많고, 불법주차된 차량 때문에 이용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지난 28일 서울 종로3가의 한 자전거 전용도로에 차를 대놓은 임 모(51) 씨는 "불법인 건 알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임 씨는 "잠깐 물건만 내려놓고 차를 빼려고 했다"며 "자전거 운전자가 조금 돌아가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세종대로 주변 자전거 전용도로에 차를 대놓은 김 모(64) 씨는 "자전거는 인도로 다니면 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어차피 전용도로가 있어도 자전거는 행인과 섞여 인도로 다니고, 잠깐 주차하는 것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경옥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서울대 도시공학 박사)은 "자전거에 대한 운전자들의 인식 부족으로 안전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자동차와 비교해) 상대적인 교통 약자인 자전거에 대한 보호가 시급하다"고 분석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전체 자전거 사고 중 90% 이상은 차 대 자전거 사고로 나타났다.

도로교통공단 김진형 교수는 "자전거 전용도로에 놓인 불법 주정차량이야말로 자전거 이용을 막는 악순환의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불법 주정차 차량 때문에 자전거 운전자는 위험을 감수하고 상위 차로로 진입해야만 한다. 위험에 노출된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자전거 이용을 꺼릴 수밖에 없게 되고, 자전거 전용도로의 통행량은 감소한다. 자동차 운전자는 자전거 전용 도로에 자전거가 다니지 않는다고 인식해서 불법 주차를 해도 된다고 여기게 되는 흐름이다.

전문가들은 자동차나 자전거 운전자의 인식 개선과 함께 인프라 구축이 자전거 사고를 줄이는 길이라고 제언한다.

김진형 교수는 "자전거 이용자가 증가하는 속도에 비해 전용도로는 아직 부족한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없고 차도와 인도가 구분된 장소에 맞닥뜨리면 자전거 운전자는 차도로 운행해야 한다"며 "바로 여기서 사고 위험성이 증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구원이 2016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 자전거 도로는 2012년 666km에서 2015년 775.9km로 매년 늘어났다. 그러나 이 중 자전거 전용도로(전용차로 포함)는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정경옥 연구위원은 "과거에 만든 자전거 도로는 안전 의식이 부족한 상태로 만든 사례가 많다"며 "가령 자전거 도로가 갑자기 끊기거나 예고 없이 차선이 좁아지는 경우가 많은데 운전자는 난처할 수밖에 없다"며 이에 대한 개선책을 촉구했다.

유년시절부터 자전거 안전 교육을 시행해 몸에 배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진형 교수는 "유럽의 경우, 중고등학교에서 자전거 교육을 이수할 시 운전면허 취득에 필요한 교육 시간을 일정 부분 감면해 주는 혜택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경옥 연구위원 역시 "자전거 이용자 중 미성년자나 노인층 등 운전면허가 없거나 운전 경험이 부족한 이들이 많다"면서도 "기본적인 도로교통법 습득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