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동행] "장애인에 생활 속 과학 가르쳐요" 퇴직 교사 김숙자씨
(제주=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전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 외에는 재능이 없어요. 그런데 이렇게 '재능 기부'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죠."
퇴직 교사 김숙자(67)씨는 26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매달 장애인 복지시설을 찾아 과학교육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된 사연을 묻자 이같이 말했다.
중등 과학교사로 30여년 근무하다가 2017년 퇴직해 교편을 놓은 지 수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과학 선생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김씨는 매달 3번째 일요일이면 자신이 이끄는 봉사 조직 '카르페디엠'(Carpe Diem) 회원들과 제주시 조천읍에 있는 장애인 복지시설 '아가의집'을 찾아 과학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재능기부 봉사를 하고 있다.
과학 프로그램을 접할 기회가 적은 장애인 청년들을 위해 생활 속에서 과학을 어떻게 활용하고 적용할 수 있는지 이론 교육부터 체험활동까지 계획해서 약 2시간짜리 체험형 과학 시간을 운영한다.
카르페디엠은 2010년 그가 제주시 아라중에 근무할 때 학생들을 모아 꾸린 과학동아리 이름이었다고 한다. 당시 제자들과 봉사활동을 해보자고 맘먹고 활동처를 알아본 끝에 아가의집과 연이 닿아 과학 분야 재능기부를 하게 됐다.
그렇게 시작한 활동이 10여년째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시설 출입을 할 수 없었던 2020년 2월부터 2022년 5월까지를 제외하고는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왔다고 한다.
프로그램도 계절과 시기에 맞게 알차다.
이를테면 추석이 있는 달엔 송편 만들기, 겨울철에는 호떡 만들기, 초여름에는 부채 만들기를 한다.
단순히 체험 활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활동과 연계된 과학 이론에 대한 설명이 항상 곁들여진다.
호떡 만들기를 하면서 녹말의 호화와 발효, 유기호흡·무기호흡에 대해 배워보고, 석고 방향제를 만들면서는 확산과 삼투에 대해 배운다.
바람의 정의와 풍향·풍속, 기압의 크기와 단위 등에 배워본 뒤 부채를 꾸미는 활동을 해보기도 했다.
김씨는 "전체 2시간 중 20분 정도는 과학적인 기본 지식을 전달한다. 개중에는 이론을 이해할 수 있는 아이들도 있어서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고 있고, 아이들이 무언가를 만들어서 산출물을 갖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체험 활동도 준비한다"고 설명했다.
카르페디엠은 이달에도 어김없이 아가의집을 찾았다. 지난 13일 무더위가 절정에 달한 한여름을 맞아 팥빙수 만들기를 했다.
먼저 각얼음과 간 얼음의 상태 변화, 열량과 비열 등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이 이뤄졌다. 이후 얼음을 갈고 각종 과일과 팥, 옥수수콘 등 토핑을 올려 팥빙수를 만들어 맛보는 시간을 가졌다.
방울토마토, 바나나, 샤인머스캣 등은 참가자들이 직접 썰어보도록 했다. 복숭아 등 손질이 어려운 과일은 김씨가 사전에 집에서 껍질을 벗기고 작게 썰어 준비해갔다.
김씨는 "팥빙수를 만들면서도 재료로 사용한 과일들이 어떤 과일이고, 어떤 계절에 나는 것인지 설명해줬다"며 일상 속 과학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회당 보통 10명 정도가 참여하기 때문에 이런 활동을 김씨 혼자 준비하고 진행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러나 물리교육 석사이자 방과 후 강사로 활동 중인 조카 김소율씨가 뜻을 함께해 프로그램 준비와 운영, 재료비 부담까지 함께 해주고 있어서 든든하다고 김씨는 말했다.
또한 카르페디엠에서 활동하는 학생들 역시 사전에 이달의 과학 주제에 대해 이론을 공부해 오고, 프로그램 진행도 도와주며 힘이 되고 있다.
김씨는 카르페디엠 활동 외에도 제주청소년과학탐구연구회가 아가의집에서 매달 1회 진행하는 과학 재능기부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는 등 아가의집을 월 2회 찾고 있다고 했다.
그는 "처음 아가의집에 갔을 땐 반에서 막내가 초등학생이었고 중·고등학생도 많았는데, 이젠 다들 성인이 됐다"며 "10년 넘게 봐와서 그런지 갈 때마다 아이들이 엄청나게 반가워하고, 달려와 안기려고 하기도 한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이 밖에도 그는 제주여성외국어자원봉사팀과 애월적십자회에 몸담아 요양원 목욕 봉사 등 다양한 자원봉사 활동을 해왔다.
재능기부와 봉사활동 외에 물질적인 후원도 오랜 기간 해왔다.
재직 중에는 월급의 10% 이상을 후원에 썼고, 퇴직 후에는 연금으로만 생활하다 보니 복지시설과 단체 등을 정해두고 월 3만∼4만원씩 20여만원을 기부하고 있다.
그는 이런 공을 인정받아 지난 2013년 유한재단 유재라 봉사상 교육 부문을 수상했다.
이 상은 유한양행 설립자 유일한 박사의 딸이자 평생 사회봉사의 일념을 실천하고 전 재산을 유한재단에 헌납한 유재라 여사의 숭고한 삶을 기리기 위해 1992년 유한재단이 제정한 상으로, 간호·교육·복지 분야에서 헌신적인 봉사의 본이 되는 여성 인사를 선정해 시상한다.
그는 당시 상금으로 받은 2천만원은 어려운 학생 등을 위해 쓰이도록 교육청·학교·단체에 기부하고 과학 체험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재료비로 써서 주변 지인들에게 상금으로 커피 한잔 사주지 못했다며 웃어 보였다.
그에게 봉사활동을 하게 된 계기를 묻자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에 '지금 이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면 앞으로는 남을 위하는 삶을 살겠다. 베풀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을 지금 행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어머니께서 생전에 '위를 바라보면 내가 한없이 불행해지고, 밑을 바라보면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었다"며 "지금의 위치에서 누군가를 도울 수 있으니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저도 많은 도움을 받으며 자라왔기에 이 사회를 위해 제가 봉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열심히 하고 싶다"며 앞으로도 봉사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atoz@yna.co.kr
ㅡ[연합뉴스]ㅡ2023.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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