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학교 폭력으로 전학 처분을 받은 다음 해에 바로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었던 가해 학생.
최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가 사퇴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 사례입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코로나19로 실시했던 원격수업이 다시 대면수업으로 바뀌면서 최근 학교 폭력 심의 건수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학교 폭력 처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지적하는 부분은 행정 소송의 진행 기간이 길다는 점인데요.
가해자는 학폭 징계 처분에 불복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처분 집행정지'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선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 조치가 이뤄지지 못할 수 있는데요.
소송 기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순신 아들의 경우 소송을 진행하는 1년간 피해자와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학교폭력 사건에 대한 학폭위의 늑장 심의는 피해자에게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는 비판도 많은데요.
실제로 2022년 전국 학폭위에 접수된 심의 중 35%가 교육부 지침인 '4주 이내 심의 기간'을 넘겼다고 합니다.
또 징계 처분 집행정지 기간에는 징계 내용이 생활기록부(생기부)에 기재되지 않는데요.
가해자는 집행정지 기간에 소송으로 시간을 끌다가 졸업하면 학폭 기록이 남지 않은 생기부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생기부의 학폭 기록은 입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수법을 쓰는 거죠.
가해자 측에서 '맞학폭'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똑같이 학폭으로 신고하거나 학폭위로 사건을 넘긴 교사들을 무고죄로 신고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학교폭력 처벌 수위를 낮추고 교사와 피해자를 사건에 소극적으로 만드는 것이죠.
생기부 검토 없이 수능 100% 반영이라는 일부 대학의 정시 제도도 문제로 꼽힙니다.
정순신의 아들이 학폭 처분이 내려진 다음 해에 바로 명문대 진학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정시 제도 덕분도 있었죠.
이상우 전 실천교육교사모임 교권보호팀장은 "'강압적으로 조사했다', 그리고 '아이가 공포감을 느꼈다' 이런 식으로 (가해 학생이) 교사를 신고하는 게 굉장히 많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그러면 (교사들이) 조사에 굉장히 소극적으로 된다. 가해 학생을 교육도 못 하고 피해 학생을 위로하고 공감하지도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교육지원청에서 학폭위를 더 마련하든지 더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렇듯 현행 학교폭력 처리 시스템엔 가해자가 빠져나갈 빈틈이 많아 보이는데요.
이에 정부는 가해 학생의 징계 처분에 대한 생기부 기재 강화를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또 수능 점수만으로 학생을 뽑는 일부 대학의 정시 전형에도 학교폭력 이력을 반영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전문가들은 피해 학생을 보호하기 위한 세심한 노력과 함께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법원의 빠르고 정확한 판결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학교폭력을 법으로 해결하기보단 교육적으로 접근해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는데요.
교사 출신인 정복연 변호사(법무법인 신광)는 "학교폭력에 대한 교육이 비디오만 한 학기에 몇 번 보여주는 그런 식의 교육이 아니라 심도 깊게 대화를 하면서 왜 학교폭력이 나쁜지에 대한 인식이 바뀔 수 있는 교육을 하는 것과 피해 학생을 정말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또 "교사가 '너는 우리가 보호한다', '네가 잘못한 게 없다'라는 어떤 확실한 사인을 줄 수 있도록 변화가 필요한 것 같다. 아이들은 교사나 친구들이 자기 편을 들어주고 보호해 준다는 믿음이 생기면 용기를 낸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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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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