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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바라비다] 조폭 잡던 김 반장, 경찰 대표 '중남미통'으로
작성일
  2021-02-23 20:46:14
조회수
  40

[비바라비다] 조폭 잡던 김 반장, 경찰 대표 '중남미통'으로

[※ 편집자 주 : '비바라비다'(Viva la Vida)는 '인생이여 만세'라는 뜻의 스페인어로, 중남미에 거주하는 한인, 한국과 인연이 있는 이들을 포함해 지구 반대편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소식을 전하는 특파원 연재 코너입니다.]

한국 경찰 대표 '중남미통' 김정석 과테말라 경찰영사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아빠 무서워. 한국 가고 싶어."

초등학교 2학년 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을 때 김정석(52·경정) 주과테말라 대사관 경찰영사는 멍해졌다. 과테말라에선 가족과 차를 타고 다닐 때도 가끔 수상한 차들이 따라붙는 등 긴장의 연속이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았던 어린 딸도 불안을 느낀 것이다.

범죄율 높고 치안 불안한 중남미에서 그 후로도 여러 해를 보내고 이달 말 귀임을 앞둔 김 영사는 지난 20일(현지시간) 전화 인터뷰에서 "그때 딸의 말을 듣고 눈물만 쏟아졌다. 가족들에겐 미안한 게 많다"고 털어놓았다.

지구 반대편 중남미는 범죄, 마약, 납치 등의 단어와 함께 언급될 때가 많다.

먼 곳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곳에도 한국 동포와 한국 기업이 있고, 많은 여행객과 출장자들이 방문한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파견한 것이 김 영사와 같은 해외 경찰 주재관이다.

김 영사는 우리 경찰 내에서도 손꼽히는 중남미통이다. 칠레 경찰대 연수와 과테말라 2회, 파라과이 1회 주재관 파견까지 총 11년 3개월을 중남미에서 보냈다.

경찰대 8기 출신 김 영사의 첫 보직은 형사반장이었다. 조직폭력배를 잡고 강력 사건을 해결하며 최고의 희열을 느꼈던 '천생 형사'가 중남미와 인연을 맺은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잠시 외사계에 근무할 때 잡혀 들어온 불법체류 페루 이민자가 쓰던 스페인어를 듣고 왠지 '내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엔 해외 주재관도 적을 때였고, 스페인어가 경찰 업무에 어떻게 도움이 될지 구체적인 생각도 없었지만 그냥 재밌어서 시간을 쪼개 스페인어를 배웠다.

이후 기회가 찾아와 2000∼2002년 칠레서 연수를 했고, 2006년 경찰이 해외 주재관을 증원하면서 김 영사가 초대 주재관으로 과테말라에 가게 됐다.

연수 중의 해외 거주 경험을 떠올리며 "최소한 '대사관은 뭐 하고 있는 것이냐'는 말은 안 듣게, 억울한 한인에게 비빌 언덕이라도 돼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지원한 것이었다.

"과테말라에 처음 가보니 그야말로 정글이더군요. 부임하고 얼마 안 돼 한인 어린이 피랍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한국에선 유괴 사건이 발생하면 수사본부가 차려지고 경찰 100명 넘게 투입되는데 달랑 혼자서, 가르쳐줄 전임자도 없이 막막했죠."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몸값을 노린 범죄조직의 납치가 잦은 과테말라엔 내무부에 납치범죄 전담팀이 설치돼 있었다. 김 영사는 일단 무작정 찾아가 인사를 한 후 자리를 뜨지 않고 그들의 수사 과정을 함께 했다.

통상 "신속하고 공정한 해결을 당부"하고 떠나기 마련인 외국의 영사가 계속 남아있는 것을 현지 경찰들은 신기하게 여겼다. 김 영사는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해 그들과 가까워졌고 피랍자의 소재가 확인된 후 현장에 함께 나갔다.

이를 시작으로 김 영사의 첫 과테말라 근무 3년 동안 한인 피랍 사건이 8건 발생했다. 현지 경찰과의 긴밀한 협조를 바탕으로 한 김 영사의 조력 속에 8명 모두 무사히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

당시 과테말라 치안 상황은 지금보다 더 좋지 않았다. 김 영사가 다룬 한인 대상 살해 위협 사건도 50건가량이었다.

김 영사 근처에도 늘 위험이 도사렸다. "어디에 사는지 알고 있다"는 위협도 들었고 현장에 가면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왼쪽부터) 김정석 영사, 로니 에스피노사 전 과테말라 경찰청 차장, 강승헌 코이카 과테말라 사무소장, 에르빈 마옌 전 과테말라 경찰청장. [김정석 영사 제공]

그렇게 3년을 보내고 귀국한 그는 그러나 또 중남미로 갔다. 2012년 파라과이 초대 경찰 주재관으로 3년을 근무했고, 3년 전엔 다시 과테말라로 왔다. 무서워서 한국에 가고 싶다던 어린 큰딸은 이제 경찰 아빠를 자랑스러워하는 대학생이 됐다.

"한국에 나보다 강력수사 잘하는 경찰은 많습니다. 나보다 스페인어 잘하는 사람도 많죠. 그러나 둘 다 필요한 곳에선 제가 가장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김 영사가 중남미를 오가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국내에도 잘 알려진 '온두라스 한지수' 사건이다.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따기 위해 2008년 온두라스에 머물던 한씨가 네덜란드인 살인 혐의를 받고 무고하게 수감됐을 때, 현지에 급파된 김 영사가 찾아낸 사망자 의료기록이 한씨의 무죄 석방에 결정적 증거가 됐다.

당시 서울 수서경찰서 강력계장이던 김 영사의 풍부한 강력수사 경험과 칠레 연수 시절부터 쌓은 중남미 경찰 인맥이 함께 빚어낸 결과였다.

"외국에 억울하게 수감된 국민을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도왔다는 점에서도 기억에 남지만, 그 사건이 영사 조력법 제정의 계기를 마련해 제도적 보완을 끌어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낍니다."

지난해 과테말라 한인 의사가 동포사회에서 벌인 코로나19 검사 결과지 위조 사기 행각을 적발한 것도 김 영사였다.

10년 넘게 중남미에서 다양한 사건을 접한 김 영사는 이곳에서 살거나 이곳을 방문하는 한인들에게 "위험한 곳에 가지 말고 위험한 일을 하지 말라"며 "특히 금전 문제로 원한을 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한다.

중남미 한인의 '비빌 언덕'이 되기 위해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 동안 남편으로서는 '꽝'이었다고 고백하는 김 영사는 기회가 된다면 다시 중남미로 오겠느냐는 질문에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스페인어로 답했다.

"콘 무초 구스토(Con mucho gusto·기꺼이)"

mihye@yna.co.kr

ㅡ[연합뉴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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