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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원의 헬스노트] 만성피로·ADHD도 가습기살균제가 원흉이었다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2011년 4월,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 원인 모를 중증 폐렴으로 입원하는 환자들이 늘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임산부였는데, 그해 5월 첫 사망자가 나온 이후 4명이 잇따라 목숨을 잃었다. 비슷한 시기 영유아의 간질성 폐렴도 연달아 보고됐다.

국민 불안은 컸다. 기존에도 원인 모를 폐렴이 있었지만, 이들 사망자처럼 건강하던 사람이 1개월 남짓한 짧은 시간에 급속히 폐섬유화증이 진행되는 양상과는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당국은 역학조사를 거쳐 원인불명 폐 손상이 가습기살균제 사용에서 비롯됐다는 결과를 내놨다. 4개월 만이었다.

이렇게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온 나라를 휩쓴 지 10년이 지났다.

그런데, 올해 1월 법원은 사회적 참사라는 국민 정서와 달리 가습기살균제 제조사 관계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동물실험 결과, 가습기살균제 성분인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이 폐 손상, 천식 등의 질환을 일으키는 인과관계를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또 지난 4월에는 옥시레킷벤키저(옥시)로부터 뇌물을 받고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 관련 보고서를 유리하게 써준 혐의로 기소된 서울대 교수가 '허위보고서 작성'에 국한해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가습기살균제 노출 이후 미토콘드리아의 크기가 위축되고, 외막과 내막이 손상된 모습. 세포 손상 시 작동하는 리보솜이 증가하는 것도 특징이다. [임종한 교수 제공]

그렇다면, 가습기살균제 피해 규명과 보상은 제대로 이뤄졌을까.

환경산업기술원이 운영하는 피해구제 포털에 따르면, 지난 6월 25일 기준으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신청자는 7천478명이고, 이 중 1천668명이 사망했다. 사회적 참사라는 표현을 부정하지 못할 만큼의 피해 규모다

그런데도 현재 정부의 지원 대상자는 4천117명에 그친다. 더욱이 피해 인정도 폐 손상과 관련한 일부 증상에 한정돼 있고, 그나마 피해 인정조차 받지 못한 환자들도 상당수 존재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사실 가습기살균제 노출에 따른 폐 손상(HDMI)은 가습기살균제 사건 초기에 피해를 정의할 때 주로 사용된 개념이다. 가습기살균제가 특이적인 흡입독성을 보이는데, 폐 중심 소엽에 특징적인 염증과 섬유화를 보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개념은 가습기살균제와 관련한 독성, 역학 자료가 전무한 상태에서 피해 규명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독성 간염, 암, 자가면역질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운동장애, 만성피로증후군, 우울증, 자살 등도 피해 범주에 들어가지만,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임종한 인하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가 지난 9일 열린 가습기살균제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가습기살균제 노출 이후 만성피로증후군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경우, 비정상 미토콘드리아 비율이 38.9%로 건강한 대조군의 7.8%보다 크게 높았다. 미토콘드리아 이상은 당뇨병, 대사증후군,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등의 발병과 연관성이 크다.

또한,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된 유아들의 ADHD 발병 위험도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견줘 2~4배에 달했다.

따라서 더 정밀한 추가연구를 하지 않은 채 단순히 '가습기살균제 피해 = 폐 손상'으로만 정의하고, 이런 양상이 아닌 다른 폐 섬유화 소견은 피해자가 아닌 것으로 판정을 하는 건 문제라는 게 임 교수의 주장이다.

[임종한 교수 제공]

이는 지금까지 나온 논문에서도 확인된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세포 손상과 염증은 단지 폐 중심소엽뿐만 아니라 살균제가 도달하는 신체 부위 어디에서나 생기고, 특히 면역세포인 T-세포 손상과 더불어 탐식세포(macrophage)의 분극화(polarization)를 거쳐 이런 손상이 더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부, 결막, 비강 점막, 기관지 점막, 폐포, 간, 신장, 면역계, 신경계, 근골격계 등과 같은 다양한 표적 기관에 전형적인 독성 효과를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임종한 교수는 "CMIT·MIT가 동물실험에서 폐 손상을 일으키는지를 단순히 판단할 게 아니라, 동물실험에서 보이는 세포손상 병리 소견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에게도 역시 관찰되는지를 살펴보면 된다"면서 "종(種) 간의 차이로 섬유화를 보이는 소견이 다른 만큼 동물시험 결과를 기계적으로 적용해서 생기는 오류를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발생했기 때문에 아직은 그 근거가 미약하고, 피해도 단정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노출 부위와 경로, 개인의 감수성 등에 따라서는 더욱 다양한 질병이 발생할 수 있다고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임종한 교수 제공]

이런 이유로 일부 전문가들은 가습기살균제 피해 증상을 여러 가지 증후가 함께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가습기살균제 증후군'으로 명명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이를 통해 피해자들에게서 나타나는 다양한 피해를 파악하는 것은 물론 제대로 된 보상과 향후 발생할 다양한 질환에 대한 대비도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최근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본 25가족(총 63명)의 이야기를 담은 수기집 '내 몸이 증거다'가 출간됐다. 피해자들은 이 책에서 가습기살균제 노출 이후 직접적인 폐 질환뿐만 아니라 신체, 정신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호소하면서 자신과 가족이 전신에 생긴 병 치료를 위해 병원을 드나들었던 지난한 세월을 기록했다.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언제, 무슨 일이 터져 건강을 위협당할지 모른다. 10년 전의 가습기살균제 참사나 현재 시점의 코로나19가 모두 이에 해당한다. 따라서 실체적인 진실을 규명하고, 환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건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유사 사례에서 본보기가 될 수 있다. 10년이 지났지만,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다시 한번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bio@yna.co.kr

ㅡ[연합뉴스]ㅡ2021.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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