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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산신청 삼보컴 이용태 전, 회장. 내 삶은 파산하지 않았다.

파산신청 삼보컴 이용태 전, 회장. 내 삶은 파산하지 않았다.

국내 IT산업 선구자 삼보컴퓨터 떠나 11년간 인성교육 매진
"이제 정보화 강국 대신 행복한 나라의 씨앗 뿌린다"

지난 2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파산법정 앞에서 만난 이용태 전 회장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용부채는 지옥으로 가는 불수레(火車) 같은 것이라고 일본의 미스터리 소설가 미야베 미유키는 묘사했다. 지난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한 파산법정 앞의 광경은 그 불수레를 떠오르게 했다.

창문 없이 꽉 막힌 법정 앞 복도에선 에어컨 대신 공업용 선풍기 두 대가 더운 바람을 내뿜었고,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권·채무자 30여명이 저마다 팔짱을 낀 채 말없이 바닥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따금 고성과 삿대질이 오가기도 하는 무거운 공기 한가운데서 백발이 성성한 이용태(83) 전 삼보컴퓨터 회장이 긴장한 표정으로 자신의 심문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나라 정보산업을 이끌어 오다가 일순간 모든 지위와 재산을 잃었다. 경제적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고급 호텔에 다니고 일등칸 비행기를 타다가 5천원짜리 점심을 사 먹고 이코노미로 옮기게 됐다. 정말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신세 한탄은 거기까지였다. 법률 대리인 없이 단출한 크로스백을 매고 홀로 심문에 나온 이 전 회장은 법정 대기실에서 만난 기자에게 그동안의 사회봉사활동에 관해 열변을 토했다. 전국을 돌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성교육을 해왔다고 했다.

이 전 회장은 2005년 삼보컴퓨터가 창업 25년 만에 기업 회생절차에 들어간 후 박약회라는 단체 활동에 매진했다. 넓은 지식과 예의 있는 행동을 강조한 공자 말씀 '박문약례'(博文約禮)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그는 거기서 새로운 인성교육 방법론을 펼쳤다.

"후진국 대한민국이 선진국을 앞지르는 길은 정보화뿐이라 믿고 평생을 바쳤다. 법정관리에 부딪힌 뒤에도 주저앉지 않고 나라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했다. 이제 IT는 나 말고도 할 사람이 많지 않나. 그래서 과거 정보화 강국의 씨앗을 뿌린 것처럼 친절하고 행복한 나라의 씨앗을 새로 뿌린다는 뜻에서 인성교육에 여생을 바치기로 했다"

때는 이미 일흔이 넘은 나이였다.

이 전 회장은 HPM(Habituation Practice Model)이라는 방법론을 소개했다. 예를 들어 '역지사지'를 가르친다고 하면, 다른 사람의 처지를 헤아려야 한다는 메시지의 글 수십 편을 6개월 동안 날마다 하나씩 읽히고, 하루 하나씩 실천사항을 적어내도록 하는 식이다. 자체 제작한 교재를 들고 퇴직한 교장 선생님 100여명과 전국으로 무료 강의를 다녔다.

지난 11년간 학교, 군대, 마을에서 이런 강의를 들은 사람이 60만명이나 된다며 그는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기회가 주어지면 미국이나 중국에도 진출하고 싶다고 했다. 순간 반짝하는 눈빛에서 국내 1호 벤처 사업가다운 면모가 엿보였다.

이 전 회장은 "파산을 신청한 이유는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명예를 회복하려는 것도, 자식에게 부채를 물려주지 않으려는 것도 아니다. 자식은 상속을 포기하면 그만이다"며 "오랜 기간 사실상 파산 상태로 살아온 것을 법적으로 정리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어떤 경우에도 살아나갈 길이 있다, 좌절하지 마라, 깊이 들여다보면 무슨 문제든 해결할 수 있다, 그런 메시지를 젊은이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었다"면서 "나는 경제적으로 파산 지경이지만, 내 삶은 파산하지 않았다.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이 전 회장은 미국 유학 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연구원, 한국전자기술연구소 부소장을 거쳐 1980년 삼보컴퓨터를 설립하고 국내 최초 개인용 컴퓨터(PC)를 내놨다. 한국 IT산업의 선구자이자 대부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사업 다각화와 두루넷 사업 실패로 삼보컴퓨터 부도를 맞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지난해 9월 중저가 스마트폰 '루나'(이른바 설현폰)를 SK텔레콤[017670]에서 단독 출시해 인기를 끈 TG앤컴퍼니의 이홍선(55) 대표는 이 전 회장의 차남이다. 이 대표는 아버지가 창업한 삼보컴퓨터를 우여곡절 끝에 다시 인수해 현재 운영하고 있다.

이용태 전 회장(왼쪽)은 1997년 9월 두루넷 대표로서 이용호 당시 한국전력 사장과 함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을 만나 초고속 정보통신 공동 개발을 약속 받기도 했다.

hanjh@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08/28 05:4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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