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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탐방] 감성 자극하는 추억의 보물창고
작성일
  2019-03-12 22:23:07
조회수
  6

파주 헤이리 한국근현대사박물관

(파주=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추억은 아련하고 서글프다.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어서다. 추억이 깃든 물건을 마주할 때 괜스레 가슴이 저리는 이유다.

하지만 느낌은 따뜻하다. 거기엔 그때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파주 헤이리에 있는 한국근현대사박물관은 이렇듯 추억과 기억을 품은 공간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그 시절의 물건이 잊혔던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련한 그 시절로 여행을 다녀왔다.

경기도 파주 헤이리에 있는 한국근현대사박물관의 1960년대 전후 골목 풍경 [사진/조보희 기자]

경기도 파주 헤이리에 있는 한국근현대사박물관의 1960년대 전후 골목 풍경 [사진/조보희 기자]

근현대사라고 하면 물먹은 솜처럼 한없이 무거운 느낌이 든다. 우리 역사에 개항과 일제강점기, 한국전쟁과 분단, 군부독재와 산업화, 광주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 등 굴곡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근현대사박물관은 전혀 무겁지 않다. 건물 외벽에 붙은 박물관의 부제(副題)도 '추억의 골목동네 달동네'다. 그곳에는 1960∼1970년대의 추억 어린 물건이 가득하다. 깃털처럼 가볍고 햇살처럼 따스하기만 하다.

박물관 문을 열고 들어서면 한가득 쌓인 잡동사니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톰과 로봇 태권 브이의 인형부터 각종 장난감, 시계, TV, 라디오, 카메라, 아코디언, 가게 카운터 금고, 양은 도시락과 주전자, 고무신, 케첩 통과 간장 종지까지…. 일상에 필요한 모든 것을 취급하던 만물상처럼 없는 게 없어 보인다. 고물상인가 싶기도 하다.

이렇듯 어지럽게 놓인 물건들은 바로 최봉권(64) 한국근현대사박물관 관장이 20대 초반부터 30여년간 전국 각지를 돌며 모은 것들이다.

누군가 관심을 갖지 않으면 사라질 것만 같은 소중한 기억을 지키기 위해 오래된 생활유물을 수집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모은 것은 자그마치 7만여 점에 달한다.

최 관장은 2005년 파주 교하에 박물관을 열었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아 신도시 부지로 수용되면서 문을 닫았고, 그로부터 5년 후 이곳 헤이리 예술마을에 박물관을 재개관했다.

한국근현대사박물관은 1960년대 전후의 동네를 고스란히 재현한 풍물관(지하 1층), 학교와 주변 등을 중심으로 문화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문화관(지상 1,2층), 근현대사를 엿볼 수 있는 역사관과 추억의 소장품관(지상 3층)으로 구분돼 있다.

계단에서 바라본 마을 풍경 [사진/조보희 기자]

계단에서 바라본 마을 풍경 [사진/조보희 기자]

◇ 냄새까지 재현된 1960년대

50여 년 전으로의 시간 여행은 매표소 옆에 활짝 열린 대문으로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우선 1960∼1970년대의 허름한 골목이 그 시절의 영화라도 보는 듯 '짜잔!' 하고 눈앞에 나타난다. 지금은 중년이 된 아빠·엄마와 머리카락 희끗희끗한 우리 할아버지·할머니가 지나온 시간이다.

'금촌상회'란 간판을 단 가게에는 태양, 한산도, 백조, 거북선 등 지금은 자취를 감춘 담배와 어느 집이든 하나씩은 있었던 비사표 성냥, 남양 분유 깡통, 사탕과 껌, 파일럿 잉크, 비닐우산, 공책 등이 진열돼 있다. 아련한 기억을 되새김질하며 미소를 감출 수 없게 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건 맛보기에 불과하다. 계단을 내려가면 허름한 집들 사이로 골목이 구불구불 이어지는 50여년 전의 동네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계단에서 보면 전깃줄이 사방으로 어지럽게 이어진 전봇대 뒤편으로 기와나 양철지붕으로 덮인 허름한 건물들이 빼곡하다.

참기름 집, 얼음집, 한약방이 있고, 버스정류장과 시장도 보인다. 2개 층을 합한 크기의 지하 공간을 가득 채운 동네의 규모도 대단하지만, 마을의 모습은 타임머신을 타고 50여년 전으로 거슬러간 듯 무척 생생하다.

최준호 한국근현대사박물관 학예사는 "이곳에 있는 집과 건물은 언뜻 미니어처로 보이지만 사실은 재개발되거나 폐허가 되며 남겨진 자재를 옮겨와 지은 옛것"이라며 "실제 사용한 자재로 재현해 그 시절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곳 공기에는 오래된 동네 특유의 냄새도 부유한다.

옛 장날 풍경 [사진/조보희 기자]

옛 장날 풍경 [사진/조보희 기자]

◇ 향수 자극하는 그 시절의 동네

골목을 따라가자 인쇄소와 대서소, 화투와 바둑판이 있는 복덕방, 우편물이 가득한 우편국, 전파사와 시계수리점이 차례로 나타난다.

복조리와 똬리, 짚신, 대패, 망치, 가위, 목탁, 주걱, 호미, 낫 등 생활에 필요한 온갖 물건을 파는 만물상도 있다.

가게마다 원래 자리인 듯 옛 물건이 잘 진열돼 있어 지금이라도 당장 손님을 받아도 될 듯하다. 더구나 당시 상인들의 활동 모습이 마네킹으로 재현돼 있어 현실감도 있다.

골목 한쪽에는 박정희의 대통령 후보 시절 포스터와 김영삼·김대중의 국회의원 선거 포스터도 붙어 있다.

석유 램프가 있는 석유 판매점과 약방을 지나 지하의 복층으로 오르면 전당포와 미장원, 다방이 나타난다. 1950∼1960년대를 풍미한 가수 황금심의 구수한 노래가 흘러나오는 다방 한쪽에서는 노신사가 마주 앉아 장기를 두고 있다.

선술집과 대폿집에서는 탁주나 소주를 기울이며 하루의 피로를 풀고, 사진관에서는 우는 아이를 달래며 기념사진을 찍는다.

'금촌극장'에는 영화 '지게꾼'(1963년) 간판이 걸려 있다. 이두용 감독의 '웃고 사는 박서방'(1972년), 김수용 감독의 '까치소리'(1967년), 우리나라 장편 만화영화의 효시인 '쾌남 홍길동'(1967년), 도금봉·김희갑 주연의 '왈순아지매'(1963년) 등 옛 배우들이 등장하는 영화의 포스터도 볼 수 있다.

다시 계단을 내려서면 미싱 가게, 철공소, 자전차포, 한복점, 양장점, 양품점, 대장간, 방앗간이 하나씩 나타난다.

계단 아래서는 구두장이가 신발을 고치고 있다. 지게를 내려놓고 쉬는 떠돌이 새우젓 장수와 뻥튀기 장수를 지나면 엿장수, 두부 파는 아낙, 땜장이가 있는 장날 풍경이 펼쳐진다.

1960년대 서민 가정의 방에서는 엄마가 엎드려 걸레로 바닥을 닦고, 아이는 서서 울고 있다. 딱지만 치다 엄마에게 혼났다고 한다. 화사한 노란색 비닐 장판과 대조를 이루는 허름한 세간살이, 콩나물시루가 시선을 끈다. 재봉틀로 한복을 짓거나 고치는 삯 바느질 집, 화려한 자개농과 화로가 놓인 상류층의 집도 볼 수 있다.

동네마다 있던 연탄 가게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달동네다. 달동네는 골목이 좁고 언덕이 높아 늦은 저녁 집에 갈 때 집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올려다보면 달이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로 좁은 계단을 오르면 스카프를 쓴 아낙이 장독 가득한 옥상에서 빨래를 널고 있다.

바로 옆에는 대각선으로 몸을 누여야 할 정도로 비좁은 자취방이 있다. 당시 청년들의 우상이었던 이소룡 사진이 벽에 덕지덕지 붙은 방에는 쌍절곤, 찬장, 밥상, 책장, 거울, 곤로(풍로), 라디오, 기타 등이 있어 달동네에 사는 가난한 자취생의 일상을 엿보게 한다.

'머리 조심'이란 경고문이 붙은 좁은 문을 들어서면 솥을 놓은 연탄아궁이가 나타나고 안쪽으로 조그만 방에서는 한 아낙이 풀을 쒀 봉투를 붙이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도시의 달동네에서는 봉투를 붙이며 입에 풀칠했다고 한다.

냄새라도 날듯 똥이 가득 쌓인 재래식 화장실을 통과하면 추억의 옛 동네는 끝이 난다.

1960∼1970년대 국민학교 모습 [사진/조보희 기자]

1960∼1970년대 국민학교 모습 [사진/조보희 기자]

◇ 교복 입고 만끽하는 학창시절

1층은 옛 학창시절을 엿볼 수 있는 문화관이다.

우선 1960∼1970년대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앞 풍경이 펼쳐진다. 문방구와 서점, 만화방이 들어서 있고, 등하교하는 아이들을 유혹하는 풀빵 장수와 번데기 장수도 있다.

문방구에는 공책과 연필과 색연필, 노트, 삼각자, 필통, 주판, 편지봉투, 피리, 금전출납부, 잠자리채, 구슬, 줄넘기와 배드민턴 채 등이 진열돼 있다.

'새희망 새설계', '겨레사랑 나라사랑' 등의 문구로 치장된 국민학교 교문을 들어서면 아이들이 말뚝박기를 한다.

풍금이 있는 교실에서는 아이들이 콩나물시루처럼 빼곡하게 앉아 수업을 듣는다. 떠든 아이들은 교실 뒤편에서 벌을 받고 있고, 난로 위엔 양은 도시락이 쌓여 있다.

교실 옆 교무실에는 학습백과사전, 각종 실험기구와 트로피, 교과서가 진열돼 있다.

이어지는 공간에는 기타·전자오르간·각종 음반과 테이프가 있는 레코드점, 교복·교련복·학생 가방을 취급하는 학생복 가게, 라면·찐빵·국수·만두를 파는 분식집 등이 들어서 있다.

바로 옆 진열장에는 학생 모자, 교과서, 상장, 학원 수강증 등이 전시돼 있다.

1970년대 상업고등학교 교실에는 책상마다 타이프라이터가 놓여 있다. 관람객은 이곳에서 교복이나 교련복을 입고 사진을 찍으며 50여 년 전 풍경 속에 흠뻑 빠져볼 수 있다.

탐방로를 따라가면 '세금은 국가의 재정, 기일 내에 바칩시다!', '콩을 더 많이 심자', '다 같이 쥐를 잡자' 등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해방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의 관공서 포스터도 볼 수 있다.

다음 장소는 새마을회관과 새마을지도자의 집. 1970년대 생활 환경 개선과 소득 증대를 위해 실시한 새마을운동에 대해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새마을회관 옆으로는 모형 소총과 철모, 교범, 군인복무규율 수첩 등 군부대 관련 물건이 전시돼 있다.

근현대사를 주제로 하는 역사관 [사진/조보희 기자]

근현대사를 주제로 하는 역사관 [사진/조보희 기자]

◇ 주요 근현대사 담긴 역사관

마지막은 역사관과 추억의 소장품관이다. 고종과 순종, 김구,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등 근현대사 주요 인물에 대한 사진과 관련 자료가 전시돼 있다. 또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88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까지의 역사가 담겨 있다.

추억의 소장품관에는 석유등, 가위와 실패, 고무신, 색동저고리, 복주머니, 달력, 잡지, 레코드판, 소주병, 맥주병, 음료수병, 카메라, 라디오, 분유통 등을 진열해 놓았다.

1966년 금성사가 생산한 우리나라 최초 흑백텔레비전도 볼 수 있다. 당시 판매가는 쌀 25가마에 해당하는 6만3천500원이다. 하지만 장기 할부판매 청약 경쟁률은 50대 1로 인기가 무척 높았다고 한다.

한국근현대사박물관이 있는 헤이리 예술마을은 박물관 24개, 미술관 51개, 공연장 6개가 모여 있는 문화·예술 공간이다. 분위기 좋은 카페와 맛집도 있어 자녀, 연인, 친구와 함께 나들이하기에 좋다.

◇ 관람 정보 = 관람 시간 10:00∼18:00(주말과 국경일은 오후 7시까지,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는 어른 7천원, 36개월∼고등학생 5천원

☎ 031-957-1125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dklim@yna.co.kr

<연합뉴스> 2019/03/12 08:0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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