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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더스] 루마니아의 화려한 성과 소박한 삶
작성일
  2019-03-11 22:45:19
조회수
  10

동화에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펠레슈 성. 연합DB

동화에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펠레슈 성. 연합DB

황금빛 야경의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뒤로 하고 루마니아로 가기 위해 기차역까지 걸어갔다. 프라하에서 밤새 달려온 기차에 올라타니 2등석이라 작은 의자가 불편해 보였지만 4개가 붙어 있어 눕기 좋았다. 모두 빈자리여서 문을 잠그고 커튼을 치니 10시간을 가는 동안 나만의 공간이 따로 없을 듯했다.

루마니아의 중부 도시 시기쇼아라에 도착하자 출입국 직원이 여권에 입국 도장을 찍어줬다. 그런데 10월 9일을 10월 18일로 잘못 찍었다. 직원에게 날짜를 가리키니 따라오라고 했다. 때마침 여권에 도장을 찍어준 직원과 마주쳤는데, 내게 고함을 치며 멱살을 잡았다. 그런데도 다른 직원은 태평스레 해바라기 씨를 까먹으며 내게 한줌 건네기까지 했다.

한참 후 여권을 돌려받고 확인해보니 이번엔 10월 8일로 찍혀 있고, 설상가상으로 기차표에는 날짜 도장이 안 찍혀 있었다. 찍어 달라고 하니 기차표 뒤에 손으로 적어주고 끝이다. 루마니아를 떠나는 날까지 별일이 없기만 빌었다.

시기쇼아라는 아름다운 중세 건축물이 잘 보존돼 있는 역사지구다. 그중에서도 시계탑은 도시의 관문을 지키는 망루이자 시기쇼아라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64m의 높이가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나선형 계단을 통해 맨 위까지 올라가니 시계를 돌리는 장치와 함께 숲과 집이 어우러진 시기쇼아라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시계탑 옆의 교회는 입장료를 1달러 받았는데, 영어 안내서뿐이라며 미안해했다. 그 마음이 귀엽게 느껴졌다.

루마니아는 산 풍경이 우리나라와 비슷한데 단풍이 특히 절경이다. 푸른 초원과 빨간 지붕, 저 멀리 설산 사이에 자리 잡은 단풍이 아름다웠다. 단풍은 우리나라가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루마니아도 만만치 않았다.

휴양 도시 시나이아에 있는 펠레슈 성에도 갔다. 160개가 넘는 방과 동화에 나올 법한 첨탑의 성에 들어간 순간 아름다움에 숨이 막혔다. 우아하고 품위 있는 성에 상상 속의 공주가 정말로 살고 있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곳을 여행하며 본 건축물 중 타지마할이 가장 아름다웠지만 그건 무덤이었고, 그 외엔 펠레슈 성이 으뜸이라고 생각했다.

드라큘라 성으로 불리는 브란 성. 연합DB

드라큘라 성으로 불리는 브란 성. 연합DB

브란 성 내부의 미로 같은 계단. 연합DB

브란 성 내부의 미로 같은 계단. 연합DB

카르파티아 산맥의 북쪽 기슭에 위치한 도시 브라쇼브에선 유명한 브란 성을 빼놓을 수 없다. 동유럽 최고의 관광지답게 방문객이 많았다. 돌 언덕에 지은 방어용 요새여서 왕족들이 여름철 별궁으로 썼던 성이다.

미로 같은 계단, 긴급 피난처와 연결된 우물, 적을 공격하고 재빨리 숨기 위한 회전식 나무 방패, 침입한 적이 헤매다가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목이지만 알고 보면 막다른 절벽…. 한마디로 수려한 자연경관 속의 철옹성이었다.

하지만 브란 성이 유명한 이유는 '드라큘라 성'이기 때문이다. 루마니아 장수였던 블라드 체페슈의 잔인한 처형법이 브람스 스토커라는 영국 소설가에 의해 '드라큘라'라는 소설로 재탄생하면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

가정집에서 민박을 했다. 과수원이 딸린 집인데 공산 정권 시절 집의 일부를 빼앗겨 여러 가구가 살고 있었다. 이들의 생활에는 많은 게 필요해 보이지 않았다. 들에 핀 꽃을 화병에 꽂고, 염소에게서 짜낸 우유를 들통에 끓여 치즈를 만들었다.

치즈는 6개월간 보관할 수 있는데 야채와 섞어 샐러드를 만들면 따로 소스가 필요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사과와 배, 자두, 호두는 지천에 널려 있고, 텃밭에 심은 싱싱한 감자와 고추, 파프리카를 먹으며, 특히 토마토는 끼니마다 풍성하게 먹었다.

먹고 남은 과일은 잼을 만들어 빵에 발라 먹고, 계란은 반숙해서 위쪽 껍질만 벗긴 다음 숟가락으로 떠먹었다. 상수리나무 밑에 숨어 자라는 버섯을 작게 다진 후 무심히 자란 민트와 섞어 올리브오일에 볶아 접시에 담으면 한 끼가 행복했다.

방안엔 벽난로가 있어 나무토막만 몇 개 넣으면 난방이 되고, 소금과 후추를 뿌린 돼지고기를 긴 나무에 끼워 잔불에 넣고 구우면 맛있는 바비큐가 완성됐다. 여기에 맥주 한 캔이나 와인을 곁들이면 완벽한 만찬이다.

욕실 물은 강물을 끌어다 쓰기 때문에 나뭇잎 같은 찌꺼기가 있지만 샤워 통 밑에 나무 조각 서너 개를 놓고 불을 지피면 온수를 펑펑 쓸 수 있었다. 좀 더 깨끗한 물을 원할 땐 받아놓은 빗물을 쓰면 된다.

아름답고 화려한 성이 많지만 실상은 소박한 루마니아 사람들. 무엇이 더 필요할까? 참으로 넉넉한 삶이 무척 부러웠다.

[마이더스] 루마니아의 화려한 성과 소박한 삶 - 4

오현숙

- 배낭여행가 / 여행작가 / 약 50개국 방문

- 저서 <꿈만 꿀까, 지금 떠날까> 등

- insumam42@ hanmail.net

<연합뉴스> 2019/03/11 10:3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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