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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뜻하고 배부른 것도 이웃의 공덕"…기부천사 보살
작성일
  2020-01-05 18:39:59
조회수
  10

기부천사 보살 김향란씨
기부천사 보살 김향란씨[촬영 박주영 기자]

(세종=연합뉴스) 박주영 기자 = "목표액이 다 채워져 나누러 갈 때는 너무 흐뭇하고, 마음이 꽉 차올라요."

세종시 조치원읍에 있는 작은 암자인 산신암 대표면서 '김 보살'로 불리는 김향란(68)씨는 수십 년째 기부를 이어오는 원동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김씨는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소외된 이웃을 위해 생활비나 연탄·쌀 등을 기부하고 있다.

평소 신도들의 굿이나 제사를 도와준 돈을 허투루 쓰지 않고 알뜰하게 모아 목표액 300만원이 채워지면 그날로 암자에서 나선다.

운전을 못 하는 그가 봉산1리 이장 박인순(59) 씨의 도움을 받아 형편이 어려운 이웃의 생활비를 보태주거나, 연탄 창고를 채워주고 난방연료비를 대납하고 다닌지 벌써 30년이 흘렀다.

그의 나눔 현장을 동행하는 박씨는 "처음엔 언니가 아무도 모르게 기부활동을 시작했다"며 "소문 좀 내도 된다고 채근해서 주변에 알려지기 시작한 게 얼마 안 된다"고 전했다.

김씨는 세종시가 '연기군'이던 시절부터 8개 읍·면을 돌면서 저소득 가정에 연탄·쌀을 전달하는 일부터 어르신 청춘사진(영정사진) 촬영 등 기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는 조치원읍 내 혼자 사는 어르신 주택의 냉난방 시설을 지원해주는 '드림하우스' 사업에도 새로 기부약정을 했다.

세종시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지난 3년여간 그가 내놓은 기부총액이 5천만원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사랑의 열매 기부 분야 금상받은 김향란씨
사랑의 열매 기부 분야 금상받은 김향란씨[세종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취재진을 만난 그는 그동안 어디에, 얼마를 기부했는지 한사코 밝히기를 거부했다.

다만 "내가 없어봐서 아는데, 가난하다는 것은 별 것 아닌 일에도 비참함을 느끼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된다"며 "도움이 필요한 분을 드러내놓고 찾는 대신 이웃 사정을 잘 아는 이장이나 부녀회장, 신도 등을 통해 파악하고 찾아다닌다"고 설명했다.

그가 지원하는 대상은 대부분 차상위 계층이면서, 읍·면 주민센터의 보호나 지원이 미치지 않는 이들이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부유한 세상이라지만, 그는 딱한 처지의 이웃이 여전히 적지 않다고 말했다.

방 안에 부엌이 들어서 있는 열악한 구조의 집에서 생활하거나 연탄 하나에 의지해 밥을 짓고 난방을 하는 이웃을 보면 가슴 한구석이 쓰라려 온다고도 했다.

그 역시 신혼시절 가난 때문에 2평 남짓한 사글셋방에서 시아버지를 모시고 남편과 아들, 딸까지 다섯 식구가 뒤엉켜 살던 아픈 기억이 있다.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아버지가 병석에 드러누우면서 3년 동안 거동을 못해 대소변을 직접 받아내던 시절이다.

여럿이 함께 쓰는 공동 수도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이불빨래를 해야 했기에 집주인과 같이 사는 이들이 좋아할 리 만무했다.

이때문에 시아버지가 병석에 있는 동안 20차례 넘게 사글셋방을 옮겼다.

그의 딱한 사정을 본 마을 이장이 배급 대상 가정에 선정되도록 주선해 매달 나라에서 주는 밀가루 한 포대와 보리쌀을 타다 먹기도 했다.

기부천사 보살 김향란씨
기부천사 보살 김향란씨[촬영 박주영 기자]

김씨는 "3년 동안 배급을 받았는데, 타러 갈 때마다 감사함에 목이 메어 말을 할 수 없었다"며 "그 당시 형편이 나아지면 30년간 이 공을 갚으며 살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던 무렵 그에게는 또 한 번 위기가 닥쳤다.

어느날 집에서 쓰러져 호흡과 맥박이 멎은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개인택시 운전을 하던 남편이 때맞춰 집에 오지 않았더라면 목숨을 장담하기 어려웠던 상황이다.

그녀는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쉽사리 의식을 찾지 못했고, 이후 여러 병원을 전전하면서도 좀처럼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다.

절박한 심정의 가족에게 병원 측은 "가망 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청천병력 같은 소리까지 했다.

그렇게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안타까운 시간이 이어졌고, 그는 낙담한 가족들과 함께 산소 호흡기를 매달고 퇴원하던 날이 돼서야 기적적으로 깨어났다.

김씨는 "당시 내 나이 28살이었는데, 그때의 기적 같은 소생이 기부의 길로 들어서게 한 계기가 됐다"며 "남은 생을 갚으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굳게 다짐했고, 부처님께 귀의했다"고 말했다.

이후 형편이 조금씩 피기 시작하면서 그는 자신과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고 한 푼 두 푼 돈을 모아 기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선행이 벌써 30년을 넘어섰다.

그는 어려웠던 시절 이런 일도 겪었다.

시아버지의 이부자리를 만들 요량으로 나일론 천과 스펀지 요를 사러 한 살배기 아들을 업고 포목점에 갔는데, 가게 어르신이 직접 미싱으로 보자기를 꿰맨 스펀지 요를 건넸다.

그 어르신은 "어린 새댁이 시아버지 모시느라 고생 많다. 추운 날씨에 얼음 깨서 빨래하지 말고, 이건 쓰고 나서 버려도 된다"며 남은 천이며 나일론 원단 등을 덤으로 얹어줬다.

그는 그 일을 회상하며 "지금 이렇게 따뜻하게 입고 먹는 것도 나 혼자 힘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공덕이 쌓인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6년 세종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주당풀이굿'(치병 굿의 하나) 기능 보유자이기도 하다.

굿을 통해 몸이 아픈 환자의 치유를 기원하거나 신도를 위해 불공을 드리면서 자신의 재능을 나눈다는 마음으로 봉사하고 있다.

그는 "신도들이 자손을 위해서 공을 들이는 간절한 마음을 알기에 내가 가진 재능으로 그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게 기쁘다"며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의 고통과 애절함을 알기에 죽는 날까지 나누는 삶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기부천사 보살 김향란씨
기부천사 보살 김향란씨[촬영 박주영 기자]

jyoung@yna.co.kr

<연합뉴스>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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