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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호 위원장 "올초 핸드폰에 입력된 번호 7천개…인맥이 자산"
작성일
  2019-10-13 20:33:38
조회수
  21

강릉국제영화제 초대 조직위원장…"명품영화제 만들 것"
티에리 프레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 등 영화제 기간 방한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초대 조직위원장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초대 조직위원장(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이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서초동의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0.13
mjkang@yna.co.kr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세상이 저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네요."

돌이켜보면 그의 인생은 늘 모험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태동한 1996년부터 15년간 집행위원장을 맡아 '문화 불모지'로 불리던 부산을 '아시아 영화 메카'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밖으로는 전 세계 100여개 영화제를 다니며 한국 영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힘썼다. 이제는 중책을 내려놓고 한숨 돌릴법한데, 그를 찾는 목소리를 외면하지 못하고 명함에 새로운 직책을 하나 더 새겼다. 지난 8월 취임한 김동호(82) 강릉국제영화제 초대 조직위원장 이야기다.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초대 조직위원장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초대 조직위원장(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이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서초동의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0.13
mjkang@yna.co.kr

◇ "명품영화제 만들 것…해외 영화제 수장들 내한"

최근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부산영화제처럼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품격있는 명품 영화제를 만들겠다"며 강한 열정을 보였다.

"강릉은 신사임당, 이율곡, 허균, 허난설헌, 현대의 신봉승 작가 같은 문인들을 배출한 역사문화의 도시죠. 동계올림픽을 치르면서 문화시설과 호텔 등이 들어섰고 풍광이 수려할 뿐만 아니라 인구도 20만명 정도 적당해 영화제를 열기에 제격입니다."

제1회 강릉국제영화제는 다음 달 8∼14일 강릉 일대에서 열린다. 문학을 테마로 세계 각국의 고전과 신작, 거장과 신인들의 작품이 골고루 섞여 70여편이 상영된다.

'영화제 달인'인 김 위원장이지만, 개막을 불과 두달여 앞두고 수장을 맡아 영화제를 꾸리기는 쉽지 않았을 터. 그러나 그는 오랫동안 다져온 인맥을 활용해 해외 게스트들을 초청했다. 티에리 프레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비롯해 이란 거장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 등이 영화제 기간 강릉을 찾는다. 1년간 스케줄이 이미 꽉 차 있는 유명 인사들이지만, 김 위원장의 '러브콜'에 기꺼이 응했다.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의 한국 방문은 2010년 부산영화제 이후 9년 만이다.

김 위원장은 "영화제 속 영화제를 지향한다"면서 "주요 영화제 인사들과 함께 영화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포럼 등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영화제는 사실상 '포화 상태'다. 1년 내내 다양한 테마로 각 도시에서 열린다. 올해만 해도 강릉영화제를 비롯해 평창남북평화영화제, 충북국제무예액션영화제 등 3개 영화제가 신설됐다.

김 위원장은 "영화제가 지속발전하려면 영화제만의 특색, 아이덴티티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충무로뮤지컬영화제, 서울무용영화제, 말레이시아 영화제 등 국내외 10여개 영화제 자문을 맡고 있다.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초대 조직위원장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초대 조직위원장(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이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서초동의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0.13
mjkang@yna.co.kr

◇ "제게 영화란 제2의 삶…장편영화 연출도 도전하고 싶어"

김 위원장은 38년간 살던 서울의 한 아파트를 팔고 경기도 광주시 팔당호 인근에 건물을 지어 올해 이사했다. 서재는 책 1만권과 DVD 3천장, 대형 스크린과 음향시설을 갖춰 작은 도서관 혹은 영화관을 방불케 한다.

그는 지난 여름부터 매달 한 번씩 영화인들과 동네 주민 열댓 명을 불러 서재에서 함께 영화를 본다고 했다. 7월에는 한국 영화 최초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을 초청해 수상 의미를 들은 뒤 고전 '마부'(강대진 감독·1961년)를 함께 봤다. '마부'는 베를린영화제 특별 은곰상을 받으며 한국 영화 최초로 3대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이다. 다음 달에는 임권택 감독과 강수연을 초청해 영화 '씨받이'를 상영할 예정이다. 그는 "동네 주민들이 좋아한다"며 웃었다.

김 위원장은 여든이 넘은 지금도 하루를 시간 단위로 쪼개 일정을 소화한다. 시간이 날 때는 집 인근 운동장을 몇바퀴씩 돌거나, 테니스를 치며 건강관리를 한다.

그는 한때 영화계 손꼽히는 '두주불사'였다.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졌지만, 해운대 해변에 빽빽이 늘어선 포장마차촌이 부산영화제 뒤풀이 장으로 자리매김한 것도 그의 공이 컸다.

그런 그가 제10회 부산영화제를 마치고, 우리 나이로 일흔살이 되던 해인 2006년 1월 1일부터 금주를 선언한 뒤 지금까지도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더는 술로 해외 영화인들을 눕혀놓지 않아도 영화제가 굴러가겠구나 싶어서 끊었죠. 남들 10명이 먹을 술을 혼자 평생 마셨으니 더는 미련이 없습니다."

서글서글한 인상과 호탕한 성격, 특유의 친화력을 지닌 김 위원장은 올 초까지 휴대폰에 약 7천명의 번호가 입력돼 있었다고 한다. 지난 2월 휴대폰을 분실하는 바람에 지금은 2천~3천명으로 줄었다.

"해외 친한 영화인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면 비행기를 갈아타고서라도 병문안을 하러 갔고, 돌솥밥이 맛있다고 한 영화인에게는 한국에서 돌솥 2개를 사서 택배로 보내기도 했죠. 심지어 재혼식에 비행기를 타고 참석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정성을 다해 다져놓은 인간관계는 소중한 자산이 됐다. 그는 이날도 1958년 육군 논산훈련소에서 두 달 간 함께 지낸 내무반 동지들을 만나러 가야 한다고 했다. "서로 의기가 맞아 60년 넘게 연락하며 지냈죠. 내무반 40명 중 아직 살아서 정신 멀쩡한 10명 정도가 한 달에 한 번씩 순두붓집에서 만나 안부를 묻습니다."

김 위원장은 자신의 인생을 크게 3기로 나눴다. 1기가 공직 생활이라면 2기는 영화와 함께한 세월이다.

경기중·고등학교와 서울대 법대를 나온 그는 24살에 문화공보부 말단 직위로 공직에 첫발을 내디뎠다. 고속승진을 거듭하다 1980년 요직인 기획관리실장에 올랐고, 8년간 최장수 기획관리실장으로 재직했다. 공직에 있으면서 문화예술진흥원을 창설했고 독립기념관, 예술의전당, 현대미술관, 국악당 등도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초대 조직위원장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초대 조직위원장(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이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서초동의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0.13
mjkang@yna.co.kr

이후 영화진흥공사 사장을 지내며 영화와 인연을 맺었고 예술의전당 사장, 공연윤리위원회 위원장, 문화부 차관,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등을 지냈다.

2010년 부산영화제에서 물러난 뒤에는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원장을 역임했다. 올해 부산영화제에도 대학원 세미나 참석차 방문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3기에는 나 자신의 삶을 찾아야 하는데 아직 헤매고 있다"면서 서예·유화 등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는 1964년 서예국전에서 입상할 정도로 뛰어난 서예 실력을 지녔다.

내년 즈음 회고록도 펴낼 계획이다. "회고록에는 제 삶이 주마간산 격으로 담길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박중훈, 봉준호가 우리 집에 왔을 때 책 제목을 '어느 미친놈의 80년'이라고 하면 어떨지 모르겠다고 농담처럼 얘기한 적이 있죠. 실제로 공직 생활할 때는 일에 미쳤고, 그다음에는 영화에 미쳤고, 취미로 치던 테니스에도 미쳤으니 '미친 80년'은 맞는 것 같습니다. 허허"

단편영화 '주리'를 연출하기도 한 그는 "언젠가는 장편영화도 만들고 싶다"면서도 "그런데 도전하는 순간 완전히 파산할 것"이라며 웃었다.

마지막으로 한국 영화에 대한 애정 어린 조언도 잊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창동, 봉준호, 김기덕, 홍상수, 박찬욱 등 몇몇 감독들이 한국 영화를 알리는 역할을 해왔는데, 그 뒤를 이을 감독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김보라 감독의 '벌새' 같은 훌륭한 독립·예술 영화들도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fusionjc@yna.co.kr

<연합뉴스>2019/10/13 09: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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