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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소멸에 맞서다]㉓ '한 달 살아보기'로 은퇴자 유치하는 가평
작성일
  2023-10-16 20:50:18
조회수
  8078

[지방소멸에 맞서다]㉓

'한 달 살아보기'로 은퇴자 유치하는 가평

(가평=연합뉴스) 김도윤 기자 = "자급자족 생활을 꿈꾸며 귀촌을 계획했지만 빈 도화지 상태여서 막연했는데 가평에서 한 달간 살면서 스케치를 할 수 있게 됐고 이젠 하루라도 빨리 색을 입히고 싶습니다."

서울에서 사회복지사로 활동 중인 유정아(64)씨는 지난달 가평에서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을 수료한 뒤 빨리 귀촌해 된장 등 발효 음식을 만들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도시녀인 그는 농촌 생활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지만 한 달 살기를 통해 땅 사는 법부터 집 짓는 노하우, 농작물 재배법 등을 배우면서 귀촌에 자신이 생겼다.

유씨가 참여한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은 한 해 두 차례 진행되는데 올해는 5월 8일∼6월 2일, 8월 28일∼9월 22일 운영됐다.

1주 차에는 선배 귀촌인을 만나 지역 실정을 설명 듣고 2주 차부터는 부동산, 일자리 등에 대한 정보를 습득했다.

3주 차 들어서는 농장·문화 체험과 함께 자신에게 맞는 귀촌 마을을 찾아보고 4주 차에는 꿈꾸는 귀촌 귀농을 설계했다.

가평 귀촌귀농학교 교육생 텃밭 체험

퇴직을 앞두고 공로 연수 중인 부부 공무원 오해석(61)·김현숙(60)씨도 지난달 종료된 7기 과정에 참여했다.

오씨는 "어린 시절 살았던 농촌에 대한 향수 때문에 평소 귀촌에 관심이 많았지만 직장과 아이들 공부 때문에 도시를 떠날 수 없었다"며 "이젠 시끄럽고 바쁜 도시를 떠나 아내와 함께 자연의 시계에 맞춰 살고 싶다"고 기대했다.

오씨 부부는 귀촌 지역을 정하지 못한 채 가평에 왔다. 일부 지역은 외지인에 대한 텃세 때문에 갈등이 있다는 기사가 간혹 나와 걱정도 했지만 가평에 사는 동안 주민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이런 고민이 싹 사라졌고 정도 들었다고 한다.

가평 한 달 살기 프로그램 7기에는 아직 은퇴가 먼 훗날의 일인 청장년층도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토종 종자 복원을 9년째 취미로 하는 오정훈(42)씨. 그는 종자 복원에 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물 좋은' 가평에 왔다.

빨리 이사하고 싶어 우선 아파트로 옮겼지만 앞으로 집도 짓고 종자 복원에 필요한 땅도 장만할 계획이어서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한 달 살기 프로그램 중 하나는 조종면 상판리의 커피 농장 체험이다.

귀농 10년 차인 농장주 엄기용(66)씨는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프로그램 참여자들에게 필요한 귀농 노하우를 전수해 준다.

"단순히 로망만으로 귀촌하면 낭패 보기 일쑤다. 반드시 일정 기간 살아보고 지역을 충분히 공부한 뒤 결정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게 조언의 핵심이다.

엄씨의 실패담은 귀촌을 꿈꾸는 많은 사람이 새겨들을 만하다.

그는 2014년 6월 인접 도시인 구리시에서 34년간의 공직 생활을 명예퇴직하고 가평에서 커피 농부 겸 바리스타로 인생 2막을 열었다. 노후를 염두에 두고 가평에 농지를 구매한 뒤였고 귀농 교육도 착실하게 받았다.

그해 도심 아파트를 처분하고 농촌 마을로 이사하면서 부농의 꿈에 부풀었다고 한다. 비닐하우스에 시험용 커피나무를 심고 포도나무도 재배하기로 했다.

누구보다 충실히 준비했다고 자신했지만 책과 현실은 아주 달랐다고 한다.

예상 못 한 이 지역 골바람에 비닐하우스가 통째로 100m가량 데굴데굴 굴러가 인근 포도 농장 언저리에 걸렸고 남의 농사까지 망칠 뻔했다.

겨울을 난 포도나무는 말라 죽었다. 땅이 건조하다는 사실을 몰랐던 탓이었다.

커피 체험 농장 운영 중인 10년 차 가평 귀농인

엄씨는 "지역의 기후와 지형, 특성 등을 충분히 알아야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다"며 "그런 면에서 마을 주민은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마을 주민에게 다가가 무엇이든 물어봤다.

정이 넘치고 여유로운 전원생활이었고 마을 주민들도 내 일처럼 도와줬지만 부농의 꿈과 달리 2년간 수입이 없었다.

방향을 잃고 헤매며 인터넷을 뒤지던 중 농업기술센터 공모사업이 한눈에 들어왔다. 농촌교육농장을 시범 추진해 2천500만원을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신청한 11개 농가 중 2곳을 선정하는데 그중에 뽑혔다. 텃세가 심한 농촌에서 이방인이 선정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한다.

이 지원금으로 체험·편의 시설 등을 보완하고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그리고 2016년 4월 커피 체험 농장을 열었다. 커피의 역사와 유래, 에피소드 등을 듣고 커피를 직접 볶아 만들 수 있는 교육 농장이다.

첫해에는 다소 부진했지만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해 소문이 나고 방송에도 소개되면서 교육생 수가 점차 늘어 월 700명을 찍기도 했다.

그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국을 덮쳐 교육생이 뚝 끊기자 비대면 화상 회의 툴을 활용해 극복했고 최근 월 500명 수준을 회복했다.

엄씨는 공공기관 등에서 인생 2막 비법을 강의하거나 귀농귀촌학교 강사로도 활동하며 자기 경험과 실수를 들려주고 있다.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은 채성수 가평 귀촌귀농학교장이 2020년부터 운영 중이다. 기수당 8명 안팎이 참여하는데 가평 이외 지역 거주자들만 신청할 수 있다.

채 교장도 귀촌인이다. 2005년 서울 성북구에서 가평으로 와 집을 짓는 과정에서 사기를 당하는 등 힘든 시기를 보낸 뒤 자신과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도움을 주고자 2016년 귀촌귀농학교를 열었다.

귀촌귀농학교는 한 달 살기와 달리 6∼8일 과정인데 그동안 약 1천200명이 수료했다. 이 중 10%가 가평으로 전입해 터를 잡았다. 다른 지역으로 귀촌한 수료생도 60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일주일 정도로는 아쉽다는 수료생이 늘자 소수만 참여하는 심화 프로그램으로 한 달 살기 과정을 추가로 개설했다.

가평 귀촌귀농학교 교육생 오리엔테이션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은 수도권의 대표적인 인구소멸 위기 지역인 가평군에 희망의 빛을 던져 주고 있다.

그동안 1∼5기 참가자 42명 중 9명(5월 기준)이 가평으로 귀촌하는 성과를 냈다. 올해 참가한 6∼7기 중에서도 일부가 프로그램에 만족감을 표시한 뒤 가평으로의 귀촌을 염두에 두고 있다.

가평군은 2019년부터 지방 소멸 위기를 감지하고 대응에 나섰다. 정부가 지난해 전국적으로 인구감소 지역을 선별해 대응 기금을 지원하기로 하는 등 지방 소멸 위기 대응에 나선 것보다 3년 앞섰다.

가평군은 2019년 말 전국 처음으로 '인구 위기 지도'를 자체 제작했다.

인구가 1966년 7만4천709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지속해서 줄어 20년간 5만명대를 유지하다가 2011년 6만명을 회복했으나 2019년 261명이 태어나고 642명이 사망하는 등 역대 가장 큰 격차를 보였기 때문이다.

지도를 제작해 보니 126개 마을(리) 중 103곳(81.7%)이 30년 안에 사라질 수 있다는 충격적인 분석이 나왔다.

이들 마을은 인구소멸 위험 지수가 0.5 미만으로 나왔다. 20∼39세 여성 인구가 65세 이상 인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다행히 전입·전출 등 사회적인 이동에 따른 인구 추이를 반영해 보니 인구소멸 위기 마을이 절반으로 줄어 희망이 보였다.

가평에서 5일을 보내는 '2도 5촌'을 택하거나 아예 이곳으로 이사한 젊은 연예인들이 TV에 소개되면서 심리적 거리가 준 점도 기대를 갖게 했다.

가평군 '인구 위기 지도'

가평군은 이듬해인 2020년부터 행정력을 인구 늘리기에 집중했다.

이 무렵 가평 귀촌귀농학교도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을 시작했으며 지난해에는 가평군의 지원사업에 선정됐다.

이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이 선배 귀촌귀농인, 주민, 부동산 중개소 등을 방문해 지역 정서와 주택·농지에 대해 배우고 농장 체험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작물을 판단할 수 있게 해 귀촌에 대한 기대와 자신감을 높인다는 평가다.

4주 과정을 마치면 창업자금과 농가주택자금 등 국비를 지원받을 자격도 생긴다.

채 교장은 "도시민이 귀촌귀농·창업에 필요한 정보를 스스로 배우고 계획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며 "시행착오를 줄이고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kyoon@yna.co.kr

ㅡ[연합뉴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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