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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더스] 먹거리 때문에 생겨난 시장 / 다양한 음식의 재료를 구할 방법이 교환 내지 거래 외에 무엇이 있었을지. 이를테면 채소밖에 재배할 수 없는 고립된 산간벽지에서 싱싱한 물고기를 구할 방법이 시장 외에 무엇이 있었을까.
작성일
  2023-03-06 23:45:58
조회수
  124

바로우 마켓(Borough Market)

오늘날 사용하는 영어 단어 'market'(시장)의 어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중 고대 라틴어 'mercor'(교환하다, 거래하다)가 프랑스어(markiet)로 변용됐다가 영어(market)로 정착했다는 설에 나는 동의한다.

그 이유는 빼어난 라틴문화가 어떻게 유럽으로 확산했는지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음식문화를 시대별로 보면, 대부분이 영국 이전에 프랑스, 프랑스 이전에 이탈리아식으로 역사의 시계가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음식에 관한 수많은 영어 단어 중 라틴어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시장은 사람들이 먹고사는 행위와 연관된 음식문화에서 볼 때 굉장히 중요하다. 생각해보라. 단순하고 투박하기 짝이 없던 자급자족의 원시적인 시대를 지나 좀 더 다양한 음식의 재료를 구할 방법이 교환 내지 거래 외에 무엇이 있었을지. 이를테면 채소밖에 재배할 수 없는 고립된 산간벽지에서 싱싱한 물고기를 구할 방법이 시장 외에 무엇이 있었을까.

이런 면에서 시장은 인류가 문명과 문화를 거듭해 진화하면서 중요한 공동체의 중심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먹거리는 역사의 어느 구석에서 봐도 언제나 자리를 만들었고, 먹거리가 스스로 창출해낸 그 공간에서 벌어진 수많은 역할은 인류의 삶에 긍정적인 기능을 수행했다.

이런 믿음에서일까? 아니면 나의 직업과 전공에 대한 본능에서 기인한 것일까? 나는 여행을 할 때 방문지에서 시장을 찾아보는 버릇이 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도시는 말할 필요도 없고, 최소한 마을 형태를 띤 사람들의 공동체에는 반드시 시장이 있거나 시장이 더 발전해 형성된 '중심가'(high street)가 있다.

오래된 대학이 있나, 없나? 그 도시에 성당이 있나, 없나? 유럽 사람들은 흔히 이 두 가지로 그 도시의 연륜을 가늠한다. 하지만 나는 '시장이 있나, 없나?'를 또 다른 기준으로 추가하자고 주장한다. 유럽을 여행할 때 이 3가지 기준을 모두 갖춘 도시라면 무조건 가도 되는 최적의 선택지라고 말하고 싶다. 수많은 역사의 흔적을 풍성하게 찾을 수 있는 방문지란 점에서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살고 있는 런던, 즉 유럽의 여러 도시 중에서도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3대 문화도시라고 할 수 있는 이곳에도 전통시장을 출발점으로 해서 오늘날 방문객들이 차고 넘치는 관광 명소들이 있다. 코벤트 가든(Covent Garden), 바로우 마켓(Borough Market), 노팅힐 마켓(Nothing Hill Market)이 대표적이다.

코벤트 가든은 나이가 좀 지긋한 사람들에게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의 주요 무대로 익숙한데, 이 영화에서 오드리 헵번은 채소를 파는 장터 모퉁이에서 꽃을 파는 처녀로 등장한다.

이 시장의 역사는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길다. 그 후 수도원 채소밭과 영국 최대의 야채·청과물 시장으로 역할이 다양해지면서 사람들이 몰리는 거래의 중심지가 됐다. 세월이 지나면서 청과시장은 교외로 이사 갔지만 이미 형성됐던 시장의 경제적 기능은 박물관, 오페라하우스, 음악·연극 공연, 펍, 레스토랑 등이 자리 잡은 문화적 허브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영화 '노팅힐'로 익숙해진 노팅힐 마켓도 지금은 오래된 골동품과 액세서리 등 다양한 잡동사니가 즐비한 곳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곳 또한 팜랜드(Farm Land)에서 시작해 채소와 푸성귀 등을 런던 서쪽 동네의 부자들에게 제공한 유명한 채소시장이었다.

다소 영국적인 분위기의 가게가 즐비해 낭만적인 정서를 만끽할 수 있는 명소지만 런던의 음식역사에서 빠지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곳이다. 지금도 매주 토요일에 열리는 야채시장은 서쪽의 런던 시민들에게 각광받는다.

바로우 마켓은 코벤트 가든이나 노팅힐 마켓과 달리 여전히 풍성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시장이다. 이곳 역시 관광 명소지만 원래의 시장 기능, 즉 음식에 관한 재래시장 본래의 기능을 여전히 수행하고 있고, 바로 이런 이유로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장소가 됐다.

요즘도 이곳에선 엄청나게 다양한 식재료를 도매나 소매로 팔며, 먹거리도 풍성하게 갖추고 있다. 바로우 마켓을 보는 것 자체가 음식이고, 이 음식들을 사 먹는 자체가 방문의 주요 목적인 셈이다. 영국에서 오래된 재래시장 중 단연 으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이 장소는 런던의 중요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처럼 내 관심 분야를 챙기는 글을 적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자책하며 조심한다. 그런데 사실 삶의 어떤 분야에서나 먹거리가 개입되지 않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만큼 음식이 어디서든 감초 같은 존재라는 얘긴데, 이 또한 궁색한 변명이 될까?

즐거운 여행이 더 풍성해지기를 소망하는가? 그렇다면 반드시 그 방문지의 시장을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정갑식 음식문화 칼럼니스트

ㅡ[연합뉴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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