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현역 화가 곽훈 "아이디어 생기면 새벽에 화실 불 켜죠"![곽훈 개인전 전경 [선화랑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7.yna.co.kr/etc/inner/KR/2022/06/13/AKR20220613030900005_01_i_P4.jpg)
(서울=연합뉴스) 김준억 기자 = "화가는 일하는 재미로 사는 거죠. 새 아이디어가 생겼는데 그리지 않으면 보물 같은 걸 버리는 마음이 드니까, 새벽에 화실에 불 켜는 거죠." 곽훈(81) 화백은 요즘도 경기도 이천에 마련한 작업실에 이른 아침부터 나가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이 개관 45주년을 맞아 기획한 곽훈 개인전의 전시장 1층은 작가가 올해 작업한 '할라잇'(Halaayt) 연작들로 채워졌다. 지난 10일 전시장에서 만난 곽 화백은 할라잇은 알래스카의 이누이트족 언어로 '신의 강령'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영감을 얻으려고 알래스카에 여러 번 다녀왔다는 작가는 짐승 뼈로 세운 골격에 고래 내장을 씌워 만든 조그만 카누에 일가친척들이 타고 바다로 나가 목숨을 걸고 고래를 잡는 행위가 조상신과 연결되는 애니미즘이라며 굉장히 흥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곽훈 '할라잇', 캔버스에 아크릴, 145.5×112㎝, 2022 [선화랑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8.yna.co.kr/etc/inner/KR/2022/06/13/AKR20220613030900005_02_i_P4.jpg)
작품 속 고래들은 제 몸에 박힌 작살을 끊어 내려는 듯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바다 위로 솟구쳐 오른다. 작가는 알래스카에서 실제 고래 사냥을 본 적은 없고 고래 뼈만 봤다며 드로잉을 수백 장 그려야 했다고 말했다. 반추상화 같은 작품이지만, 고래 사냥의 현장감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곽 화백은 "고래가 나오는 영화도 봤는데, 스피디하게 표현한 내 그림이 더 실감 난다"며 고래 사냥을 사진으로 연출하면 영적인 분위기를 살릴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작가는 울산 반구대암각화를 보고 충격을 받아 고래잡이 연작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7천 년 전에 우리 조상이 거대한 고래를 잡았고, 그 기록을 남겼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곽훈 개인전 전경(드로잉) [선화랑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9.yna.co.kr/etc/inner/KR/2022/06/13/AKR20220613030900005_03_i_P4.jpg)
전시장 2층에는 작가의 1990년대 대표작 '겁'(劫) 연작을, 3층에는 1980년대에 상당한 인기를 구가했던 '기'(氣) 연작을 중심으로 전시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여러 가지 회화 작품들을 전시한 전례가 없다면서 "이번 전시는 대규모 회고전"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전시회에 충격받고 흥분한 사람이 바로 나"라며 "40년 전 그림의 테크닉이 신작과 별로 다르지 않다. '곽훈의 작품은 연결선이 없다'고 깎아내리는 평도 받았는데 여기에 다 전시해놓으니까 다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경북고 미술부 출신인 곽 화백은 서울대 미대 1학년 때 4·19혁명이 일어나는 등 이유로 대학에서 회화 기법은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고 한다. 이화여고 미술 교사로 재직하다 1975년 미국에 이민을 간 이후 독창적인 기법을 완성했다. 그는 "이민 첫해부터 5년 정도 광고회사에서 전람회용 그림을 그리는 일을 했는데, 대단히 많은 미술 재료들이 있어서 일하면서 독학으로 테크닉을 개발했다"며 "내 테크닉은 미술대학에서 가르치지 않는, 족보가 없는 테크닉"이라고 말했다. 곽 화백은 "미국에서 성공하려면 아이디어도 기발해야 하지만, 테크닉도 기발해야 한다"며 "그래서 종이에는 유화를 그리고, 캔버스에는 수성 물감(아크릴)으로 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활동할 때 한국에서 한지를 가져가 석고를 이용해 배접하고서 유화를 그리기도 했다. ![곽훈 '할라잇', 캔버스에 아크릴, 116.8×81㎝, 2022 [선화랑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yna.co.kr/etc/inner/KR/2022/06/13/AKR20220613030900005_05_i_P4.jpg)
할라잇 연작은 과거의 기, 겁 연작과 달리 관념을 표현한 추상화는 아니지만, 회화 기법은 비슷하다. 팔레트를 쓰지 않는 작가는 캔버스 위에서 아크릴 물감을 넓은 붓과 나이프로 겹쳐 바르고, 적당히 마르면 긁어내기도 한다. 각 연작에 쓰인 이런 기법은 생동감을 주는 게 특징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는 평면 작품들을 선보였지만, 곽 화백은 설치 작가로서도 명성이 높았다. 최초로 한국관이 마련된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참여작가 4명 중 1명으로 선정됐을 때 옹기 10여 개를 퉁소처럼 보이게 나무에 매단 설치 작품과 비구니 스님의 퍼포먼스를 선보여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미국에서 처음 인정받은 작품이 찻사발과 가마를 그린 작품이었기 때문에 가마를 짓기 위해서 이천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4년여 고래잡이 그림을 그려온 그는 "이제 싫증이 나서 다른 것도 하고 싶다"며 "페루 여행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있는데, 한두 번 더 가서 페루 고대 유적과 관련한 그림을 시작해볼까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7월 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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