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만났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어쩌랴, 뜨거운 돌 하나 가슴에 품고 살듯 열이 난다. 때늦은 사랑과 이별을 그린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아침 안개에 스며든 가을 햇살처럼 감수성을 자극하는 한 편의 시와 같다.
지난달 15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국내 초연된 작품은 로버트 제임스 월러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지난 2014년 브로드웨이에서 만들어진 로맨스 뮤지컬이다. 1965년 미국 아이오와의 시골 마을인 '매디슨 카운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공읽남] '감동하되 따라 하진 말라'…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통통TV]
노래로 공허함을 달래고 있는 중년의 여성 '프란체스카'가 작품의 주인공이다. 이탈리아가 고향인 프란체스카는 2차 세계대전 중 만난 남편을 따라 이곳에 왔다. 시골에서의 일상이 무료하기만 한 어느 날, 남편과 아이들은 다른 지역에서 열리는 박람회에 참가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모처럼 홀로 남게 된 프란체스카는 집안일에서 해방돼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그날 오후, 프란체스카에게 사진작가 '로버트'가 운명처럼 나타난다. 로버트는 마을에 있는 '로즈먼 다리'를 촬영하기 위해 왔다가 길을 잃고 프란체스카에게 도움을 청한다. 첫 만남부터 알 수 없는 감정으로 서로에게 끌린 둘은 마을 이야기를 하며 가까워진다. 급기야 프란체스카는 혼자 있는 집에 로버트를 초대하고, 서로의 감정을 알게 된 둘은 거부할 수 없는 사랑에 빠지고 만다.
원작의 이야기를 충실히 따른 작품은 중년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명확히 말하자면 기혼 여성의 불륜 이야기다. 이런 이유로 개막 전부터 화제가 됐던 작품은 대중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작품은 불륜의 이야기로만 단정하기는 너무나 강렬하고 아름답다. 두 인물의 사랑은 분명 위험해 보이지만, 너무나 애잔하고 쓸쓸해 눈물겹기까지 하다. 평온하다 못해 지루한 주부에게 갑작스레 찾아온 사랑은 청춘의 격정보다 더 절절하고 뜨겁다. 주인공 역을 맡은 옥주현과 박은태의 연기력과 가창력이 다시 한 번 주목받는 대목이다.
극을 이끌어가는 두 배우의 호흡도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높인다. 세대를 초월해 금지된 사랑을 연기한 옥주현과 박은태의 무대는 관객들의 마음을 훔치며 먹먹한 감동을 선사한다. 서로에 대해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 두 인물 사이에서 펼쳐지는 강렬하고 부드러운 감정 연기는 그 눈빛마저 관객들을 전율케 한다. 특히 극 후반 쓸쓸한 모습으로 프란체스카의 행복을 지켜보며 떠나는 박은태의 눈빛 연기는 여심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무엇보다 극의 감동을 더 하는 것은 애절한 노래다. 짧지만 강렬했던 나흘간의 사랑이 끝을 향해 가며 감정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부르는 '단 한 번의 순간'(Before And After You / One Second And A Million Miles)은 둘 사이의 감정이 폭발하며 아름답고 가슴 시린 감동을 선사한다. 프란체스카와 이별한 뒤 로버트가 그녀를 추억하며 부르는 '내게 남은 건 그대'(It All Fades Away)는 그랜드 피아노의 선율과 어우러져 달곰하고 감미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화려한 무대 배경과 영상은 늦여름의 서정으로 충만했고, 등장인물의 내면과 공간의 정서를 투영한 무대 조명은 격조가 높았다. 다만 무대 소품을 나르는 앙상블들의 움직임은 극의 몰입도를 방해하는 느낌을 준다.
김태형 연출은 작품에 대해 "인생에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있다. 이 작품은 그 선택에 관한, 어찌 보면 흔히 불륜이라고 부르는 이야기"라면서 "그러나 주인공들은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고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고 평생을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선택을 관객에게 맡긴다"고 말했다.
작품을 통해 이런 사랑을 흠모하는 관객이 있을까. 그렇다면 찬물을 끼얹을까 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표현으로 미화한다 한들 불륜은 불륜이다. 또한, 며칠 동안의 사랑만을 가지고 평생을 그리워하며 사랑할 남자는 그 어디에도 없다. 십중팔구 "예전에 내가 말이야"하며 허세 떠는 남자들의 무용담 거리로 전락할 게 뻔하다. 당신의 진심은 변색하고 각색될 것이다. 그 남자의 허세처럼 말이다. 작품은 오는 6월 18일까지 만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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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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