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삶을 훔쳐보려는 관음적 호기심은 누구에게나 잠재된 욕망 중 하나다. 그러나 절제되지 못한 관음적 욕망은 가학적인 쾌락과 같아서 자신은 물론 타인의 삶을 파괴하기도 한다.
관음에 대한 욕망을 그린 연극 '맨 끝줄 소년'이 절찬리에 공연 중이다. 작품은 스페인 극작자 후안 마요르가(1965년~)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2015년 국내 초연된 이 작품은 지난해 2월 세상을 떠난 김동현 연출의 유작이다. 이번 공연은 그의 아내인 연극평론가 손원정이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해 리메이크해 연출했다.
작품은 고등학교 문학교사 '헤르만'이 학생들의 작문 과제를 채점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헤르만은 그저 그런 수준의 작문 과제를 채점하던 중 교실 맨 끝줄에 앉아 있던 학생 '클라우디오'의 작문을 보고 흥미를 느낀다. 한 편의 소설과도 같은 그의 작문에는 같은 반 친구 '라파'의 가족에 대한 수상한 관찰이 담겨 있다. 글 안에는 라파의 어머니에 대한 그의 은밀한 욕망도 그려져 있다. 야릇한 전율을 선사하며 전개되던 친구 집 방문기는 '계속'이라는 글로 끝맺는다.
그의 작문에서 묘한 매력을 발견한 헤르만은 그의 숨겨진 재능을 키워주기로 한다. 헤르만은 소설적인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매력적인 갈등'을 만들라며 클라우디오를 가르친다. 클라우디오는 도덕성을 넘나드는 위험한 생각들을 현실로 만들어 간다. 급기야 라파의 어머니와 위험한 관계를 맺게 된다.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 헤르만은 뒤늦게서야 클라우디오에게 글을 멈추라고 요구하지만, 클라우디오의 호기심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닫고 만다. 과연 이 작문은 어떤 결말을 맺을까.
맨 끝줄 소년은 꽤 매혹적이고 영리하다. 작품은 매혹적인 이야기와 빠른 전개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문학적 관찰을 가장한 관음적 욕망은 그 소재만으로도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헤르만이 클라우디오의 글에 매혹되듯, 관객들도 '계속'이라는 마지막 문구에 다음 이야기를 상상하며 클라우디오의 작문에 빠져들게 된다.
교실 맨 끝줄 자리는 눈에 띄지 않지만 모든 자리를 지켜볼 수 있는 관찰자로서의 의미이기도 하다. 집을 나간 어머니와 병든 아버지를 둔 클라우디오는 평범한 가정에서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라파를 보며 그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왔다. 단순한 관찰자의 입장에서 라파 가족의 일상을 옮겨 적던 클라우디오의 작문은 헤르만이 개입되면서 절정에 치닫는다.
관객이 주목해야 할 점은 갈수록 라파 가족의 일상 속에 클라우디오의 감정과 상상이 버무려져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관객은 그것이 현실인지 가상인지 알 수 없는 현실과 픽션 사이에 모호한 경계선까지 이르게 된다. 이쯤 되면 관객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작품 속 이야기에 대해 엉뚱하고 발칙한 상상을 하게 된다. 관객의 내면을 자극하고 각자 다른 결말을 상상하게 하는 것이 연출의 의도가 아닐까 싶다.
손원정 연출은 "문학 글쓰기와 읽기라는 매개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과 세계를 바라보면서 사유하고 상상하는 즐거움, 또 상상이 현재 오늘에 연관을 줄 수 있는지 바라보는 묘한 연극적인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연극은 때때로 문학적인 상상력을 활용해 관객들의 훔쳐보는 욕망을 자극하기도 한다. 결국, 작가와 배우는 타인의 삶을 훔쳐 욕망을 채우고, 관객은 그 창조된 삶을 관음하며 욕망하는 공범의 관계가 된다. 어쩌면 예술을 빙자한 세상 모든 이야기가 관음적 욕망 그 자체일지 모른다.
극 중 헤르만이 말하자 클라우디오의 욕망이 꿈틀거린다. "독자들에게 쉴 틈을 줘서는 안 되는 거야. 긴장을 유지해야 해. 작가가 독자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주면 독자들은 자기 마음을 주는 거야"
헤르만 역에는 박윤희, 클라우디오 역에는 전박찬이 출연한다. 이밖에 우미화, 김현영, 유승락, 백익남 등이 무대에 오른다. 작품은 오는 4월 30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만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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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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