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 납치, 유괴, 살인 그리고 동성연애…. 소재만 들어도 눈살이 찌푸려진다. 뮤지컬 작품 중 이렇게 자극적이고 리얼한 이야기가 있을까 싶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뮤지컬 '쓰릴미'의 이야기다. 2007년 국내에서 초연된 '쓰릴미'는 지난 1924년 미국 시카고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12살 소년 유괴 살인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지난 2003년 미국에서 처음 공연된 쓰릴미는 유독 한국 관객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이다. 이토록 잔혹하고 추악한 이야기에 관객들이 매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야기는 소년 유괴살인범 '나'의 일곱 번째 가석방 심의에서 시작된다. '나'가 입을 열자 수십 년 동안 감쳐져 왔던 사건의 전말이 밝혀진다. 34년 전 이야기의 중심에는 '나'와 '그'가 있다. 나와 그는 19살에 시카고 법대를 졸업하고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을 앞둔 천재들로 동성애 관계를 맺고 있다. 나는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활달하고 이기적인 그는 냉대했다.
어느 날 그가 나에게 한 가지를 제안한다. '나는 그가 하는 일에 무조건 동조해 주는 대신, 그는 나가 원하는 무엇이든 들어준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하고 싶었던 나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둘은 피로써 약속을 맹세한다. 이후 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쾌감을 느낀다는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해야 했다. 그것이 방화이건 절도이건 말이다.
'니체의 초인론'에 빠져있던 그는 갈수록 더 강한 자극을 원하고, 결국 어린아이를 유괴해 살인할 계획까지 세우고 만다. 하지만 범행 현장에서 나의 안경이 발견되고 이들은 단번에 용의 선상에 오르게 된다. 과연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동성애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관객이라면 조금은 불편한 작품이다. 실제 공연에서 '키스신' 등 두 남자 주인공의 성적 관계를 묘사하는 장면이 적지 않다. 숫기 없고 내성적인 나는 이런 면에서 도발적이다. 나는 그의 범죄를 도우며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 자신을 만족하게 해주는 것. 나는 계약에 따라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듯 그의 몸을 탐한다.
사실 머리가 비상한 나는 처음부터 그를 철저히 유린한다. 멈출 줄 모르고 뒤틀린 나의 욕망은 처음부터 계획적이었다. 그를 바라보는 나의 눈빛은 독을 품은 꽃처럼 위험해 보였고, 나보다 절대 우위 점에 있다 생각하고 있는 그에게 오히려 도망치라고 외치고 싶었다. 결국, 나와 그의 이야기는 엄청난 반전으로 끝을 맺는다.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작품은 팽팽한 긴장감과 심리전이 여느 작품보다 돋보인다. 면도날처럼 예리하고 섬세한 두 인물의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긴장감에 어깨가 저릴 정도다. 각자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두 천재가 펼치는 심리 싸움은 치밀하다 못해 음침하다.
관람의 묘미는 '과연 누가 누구를 조종했는가'이다. 이런 관점에서 작품은 끔찍한 실제 사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두 인물의 내면과 본성을 밀도 있게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등장인물의 이름을 '나'와 '그'라는 불특정 인물로 그려낸 것은 언제 어디서든 있을 법한 관계이자 이야기라는 것으로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래서 관객들은 스스로가 작품 속 인물이 된 듯 공연에 매료되고 절정에 가서는 무릎을 치며 통탄하게 된다.
작품의 가장 돋보이는 것은 단연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두 배우는 흡입력 있는 연기로 100분에 가까운 공연 내내 관객들을 몰아세운다. 특히 얼굴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움직이며 표현하는 표정 연기는 관객들이 한눈을 팔 틈을 주지 않는다. 박지혜 연출은 "작년까지 공연할 때는 전체 큰 그림을 먼저 그리고 배우 색깔을 입히려고 했다면, 이번에는 배우들을 돋보이게 페어마다 느낌을 살려보려고 했다"며 배우의 케미를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은 한 대의 피아노로 선보이는 음악이다. 보통의 뮤지컬처럼 웅장하지 않지만, 극의 흐림에 따라 호흡하듯 이어지는 피아노의 선율은 인물들의 감정선을 자극하며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10주년을 맞은 공연에는 배우 최재웅, 정상윤, 이창용, 강필석, 정욱진, 김재범이 '나' 역을 맡았다. '그' 역에는 김무열, 에녹, 송원근, 이율, 정동화, 정상윤 등이 출연한다. 작품은 오는 5월 28일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백암아트홀에서 만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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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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