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디렉터 프로렌스 마쥬엘은 19세기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를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 무려 여섯 달 동안이나 영상과 그래픽 아카이브를 뒤져 자료를 수집했다고 합니다. 설계도 원본까지 찾아봤고 심지어 건축물 구조를 재구성하기 위해 건축가를 섭외해 새롭게 모델링해서 영화의 배경이 되는 당시 파리의 모습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시사회 관람에서 19세기 파리로 로맨틱한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애니메이션 '발레리나' 중
영화의 스토리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어려서부터 보육원에서 자란 소녀 펠리시는 언젠가 파리의 오페라하우스에서 마음껏 춤을 추는 것이 소원이지요. 소꿉친구이자 보육원 동기인 빅터는 펠리시의 이런 꿈을 응원하며, 그녀와 파리로 가서 발명왕이 되겠다는 소망을 키워갑니다.
우여곡절 끝에 둘은 보육원을 탈출해 각자 오페라하우스와 발명왕 구스타브 에펠의 연구소에 입성하는 데 성공합니다. 펠리시가 라이벌이자 프리마돈나를 꿈꾸는 부잣집 딸 까미유와 일생일대의 불꽃 튀는 경쟁을 시작하면서 극의 전개가 빨라집니다.
햇살같이 밝은 펠리시의 멋진 춤사위, 속도감 있는 바이크 라이딩 신 등이 극 초반부터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애니메이션 '발레리나' 중
기술 면에서 볼 때, 발레리나는 애니메이터 테오도르 타이, 톱클래스 안무가 오렐리 뒤퐁과 제레미 벨링가르, 음악 디렉터 클라우스 바델트의 협업으로 만족할만한 성과를 냈다고 자평할 만도 합니다.
역동적인 댄스를 구현하는 것은 고도의 기술적인 역량을 요구하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계에서는 탐나지만 성과를 내기 힘든 계륵 같은 소재로 각인돼 왔습니다. 디즈니의 1940년대 '판타지아' 이후로 발레 애니메이션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이를 대변합니다.
테오도르 타이 감독은 여러 기술적인 제약에도 '라이온킹', '뮬란', '쿵푸 팬더' 등에서 쉽지 않은 길을 추구해왔습니다. 발레리라는 그런 그의 노력에 대한 공정한 보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목소리 연기 진도 대중의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말레피센트'의 귀여운 아역 스타 엘르 패닝과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의 데인 드한이 각각 펠리시와 빅터 역을 연기했습니다.
애니메이션 '발레리나' 중
발레리나는 보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임은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국내 개봉 후 흥행몰이를 할 수 있을지에는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최근 소녀 어드벤처 장르가 강세를 띠고 있는 것이 도움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관객의 기대수준이 높아진 것이 부담입니다.
발레리나는 전 세계 모든 여성의 로망인 발레를 소재로 했음에도 상상의 나래를 제대로 펼쳐놓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내용이 자극적이지 않고 잔잔한 행복감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밋밋한 스토리 전개가 극의 몰입감을 떨어뜨리고 관람 후 진한 여운을 남기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관객이 극장에서 실사 영화 대신 애니메이션을 선택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무엇보다 애니메이션이 주는 신선한 여운에 대한 기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텁텁한 일상의 굴레에서 잠시 벗어나 얻을 수 있는 두 시간의 자그마한 사치랄까요.
그렇기에 발레리나 같은 성장 애니메이션이라 할지라도 성인 관객이 미소년 캐릭터들의 감정선에 공감할 수 있도록 이끌어 가는 연출이 중요하겠지요. 되도록 기존의 룰을 벗어난 창의적인 상상, 기분 좋은 유머, 그리고 오래 가는 여운의 옷을 입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애니메이션 '발레리나'의 오피셜 포스터
애니메이션 발레리나는 보기에 따라 스토리는 다소 약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기술적인 기준으로는 '댄스 애니메이션의 웰메이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발레의 우아하고 생동감 넘치는 동작을 애니메이션으로 감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선물이라고 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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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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