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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여주 천서리막국수
남한강 비경 속에서 즐기는 사계절 음식

(여주=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막국수는 메밀을 주원료로 하는 서민음식이다. 냉면 등 메밀 음식이 대개 그렇듯 막국수도 겨울철에 그 연원을 두고 있으나 요즘엔 여름은 물론 사계절 언제나 즐기는 연중음식으로 각광받는다. 경기도 여주의 천서리막국수는 강원도 춘천막국수와 더불어 막국수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다. 새콤한 물막국수와 매콤한 비빔막국수로 사시사철 애호가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지난 9월 당남리섬의 메밀꽃 풍경 [사진/여주시 제공]

지난 9월 당남리섬의 메밀꽃 풍경 [사진/여주시 제공]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발원한 한강은 굽이굽이 흐르고 흘러 서해로 향한다. 수상교통이 중심을 이루던 시절에 한강의 4대 나루는 서울의 마포나루와 광나루, 여주의 이포나루와 조포나루였다. 뱃길을 따라 오가는 각지의 백성들과 특산물이 잠시 머물렀던 교통 요충지가 바로 여주였다. 금사면 이포리의 옛 이포나루터에서 이포대교를 건너면 막국수 식당 간판이 곳곳에 내걸린 마을이 나온다. '천서리막국수' '홍원막국수' '봉춘막국수' '강계봉진막국수' '봉황막국수' 등등. 이름하여 천서리막국수촌이다. 대신면 천서리에 있는 이들 식당은 독특한 맛과 향으로 미식가들을 불러모은다.

막국수촌 바로 앞을 흐르는 남한강의 당남리섬에는 메일밭과 코스모스밭이 널따랗게 펼쳐져 있다. 기자가 이곳을 찾은 때는 10월 중순. 코스모스꽃이 만발한 가운데 하얗던 메밀꽃은 얼마 전 사라지고 그 자리에 메밀 열매가 흑갈색으로 야무지게 여물어갔다. 메밀밭 면적은 10만여㎡. 메밀이 이 지역 향토음식인 막국수의 재료다 싶으니 더욱 색다른 감흥으로 다가왔다.

◇ 여주 대표음식…전성기엔 30여 업소 번창

막국수 식탁은 얼핏 단출해 보이지만 들여다볼수록 수수하면서도 오묘한 조화가 느껴진다. 국수와 고명이 동치미 국물에 놓이거나 다대기 양념과 어우러지며 속깊은 입맛을 자극하는 것이다. 여기에 붉은 무김치가 사이좋은 단짝 친구처럼 맛깔나게 놓여 있다.

막국수의 소탈함은 그 이름에서 먼저 느껴진다. '막(금방) 만들어 막(곧바로) 먹는 국수'라는 뜻에서 알 수 있듯이 서민적 정취가 가득하다. '막노동' '막일' '막걸리' 같은 단어처럼 막국수도 누구에게나 편하게 다가오는 대중음식이다. 예전에는 메밀의 껍질을 분리하지 않고 맷돌에 마구 갈아 국수를 내려 먹었는데 이처럼 '막' 갈아 국수를 만들었다고 해서 '막국수'라는 이름을 얻게 됐단다.

일반적으로 막국수는 강원도를 비롯해 북녘의 산간지역에서 즐겨 먹었던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주재료인 메밀의 생육여건과도 관련이 깊다. 서늘한 기운의 척박한 고원지대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은 소박·단순한 음식으로 서민들과 애환을 함께해왔다. 춘천을 비롯해 강원지역 곳곳에서 막국수가 대표적 향토음식으로 자리 잡게 된 데는 이 같은 배경이 있다.

그렇다면 경기도 여주가 또 하나의 막국수 본향이 된 내력은 뭘까.

강계봉진막국수의 강봉진(48) 사장은 "12년 전 86세로 타계하신 아버님(강진형)이 1978년 지금의 자리에 식당을 열었던 게 그 시초"라며 "평북 강계 출신인 아버님은 1·4후퇴 때 월남해 고향의 대표음식을 이곳에서 팔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선친이 북녘의 막국수를 여주에 새롭게 정착시킨 선구자라는 것이다.

20대 중반부터 요리법을 전수받아 어머니(유영필·77)와 함께 가업을 잇고 있는 강 대표는 "이북식 막국수 요리기법이 빠르게 퍼져 2000년 무렵에는 우리 지역에만 30여 곳의 식당이 번성할 정도였다"면서 "천서리막국수는 요리법과 맛에서 춘천막국수와 차이가 난다"고 했다.

막국수 식당이 즐비했던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는 천서리막국수축제가 매년 가을 개최돼 음식의 성가를 한껏 높이기도 했다.

다양한 야채와 과일 재료를 숙성해 만든 동치미 국물 [사진/조보희 기자]

다양한 야채와 과일 재료를 숙성해 만든 동치미 국물 [사진/조보희 기자]

맛깔스러운 물막국수와 비빔막국수

맛깔스러운 물막국수와 비빔막국수

◇ 물막국수 '새콤·담백' vs 비빔막국수 '매콤·개운'

메밀을 재료로 쓴다는 점에서 막국수와 냉면은 일견 닮았다. 그렇다면 둘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간단히 말해 막국수는 메밀과 고구마 전분을 재료로 하되 메밀 비율이 80%로 월등히 높다. 냉면은 그 반대여서 고구마 전분이 80%로 우위를 보인다. 이에 따라 막국수는 끈기가 다소 떨어지는 대신에 구수함이 더하고, 냉면은 끈기가 더한 반면에 구수함이 조금 덜한 편이다.

다른 막국수나 냉면 음식이 그렇듯 천서리막국수도 물막국수와 비빔막국수로 크게 나뉜다. 먼저 물막국수의 재료와 조리법이다. 메밀가루와 고구마전분을 섞어 반죽한 뒤 국수틀로 국수를 뽑고 이를 끓는 물에 넣어 삶아낸다. 국수가 부드럽게 익으면 건져내서 찬물에 넣고 헹군다. 물막국수의 맛을 좌우하다시피 하는 핵심요소는 동치미 국물. 오이, 배, 열무, 배추, 사과, 미나리 등 다양한 야채와 과일 재료를 넣어 1주일가량 숙성시켜 국물로 우려내면 깊고 은근한 맛의 국물이 만들어진다. 이 국수와 국물에 돼지고기, 오이채, 배, 양념장, 깨소금, 계란 반쪽 등의 고명을 얹으면 한 그릇의 물막국수가 탄생한다. 돼지고기 고명은 앞다릿살을 재료로 하되 푹 삶아 양념한 뒤 먹기 좋은 길이로 찢어 넣는다. 다음은 비빔막국수 만들기. 메밀가루와 고구마 전분을 반죽해 국수를 뽑고 끓는 물에 넣어 삶아내는 등의 과정은 물막국수와 같다. 이 국수에 다진 편육과 오이, 배를 채로 썰어 올리고 그 위에 양념장과 깨소금 그리고 반 토막의 달걀을 차례로 얹거나 뿌려준다. 여기에 부드러운 김 가루도 넣어 시각적·미각적 효과를 극대화한다.

물막국수와 비빔막국수는 새콤·담백한 맛과 매콤·시원한 맛을 각각 선사한다. 물막국수는 국수와 고명, 동치미 국물이 삼박자를 이루며 입맛을 끌어당긴다. 특히 10여 가지의 야채와 과일로 만든 동치미 국물은 시원하면서도 깊은 맛을 감칠맛과 함께 느끼게 한다. 비빔막국수는 매콤한 양념장과 함께 비벼서 먹다 보면 후끈한 열기가 느껴진다. 이를 다독거려주는 게 바로 따끈한 육수. 비빔막국수를 3분의 2가량 먹었다 싶을 때 육수를 마셔주면 매운맛을 이열치열로 다스려줘 입안이 오히려 개운해진다. 물론 막국수 음식의 재료와 요리법은 식당별로 다소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막국수의 맛을 더해주는 게 무김치 반찬이다. 젓갈 등 각종 재료와 함께 숙성시킨 무김치를 어슷썰기해 상에 올리는데 달콤하면서도 깊은 맛이 일품이다. 새우젓, 다대기, 겨자를 섞은 소스에 찍어 먹는 돼지고기 편육 또한 막국수의 효능을 높여주는 주역 중 하나. 막국수의 탄수화물과 편육의 단백질이 조화를 이루며 미각을 한껏 살려준다. 메밀은 돼지고기의 기름을 분해해주는 성분도 함유하고 있다고 한다.

식당에서 만난 손님들은 막국수의 독특한 맛을 본고장에서 즐길 수 있어 좋다며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충북 청주에서 아내와 함께 온 이세훈(47) 씨는 "1990년대 후반 이 근처에서 군복무할 때 처음으로 천서리의 막국수를 만났다"면서 "맵고 칼칼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의 비빔막국수에 개인적으로 중독된 것 같다"고 얼굴 가득 웃음을 올렸다. 경기도 이천에서 왔다는 유근배(70)·이정순(67) 부부도 "20년 전에 먹어본 막국수 맛이 생각나 모처럼 이곳을 다시 찾았는데 담백한 물막국수와 매콤한 비빔막국수가 여전히 맛깔스럽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파사산 능선을 따라 길게 이어진 파사성

파사산 능선을 따라 길게 이어진 파사성

◇ 파사성 등 주변 명소 구경은 '덤'

일거양득이다. 천서리막국수로 입맛을 즐긴 뒤에는 주변 관광지를 둘러보자. 남한강이 유장하게 흐르는 천서리 주변에는 역사의 흔적과 자연의 풍취를 살펴볼 수 있는 관광지들이 많다. 그중 하나가 천서리막국수촌의 북쪽에 있는 파사성(사적 제251호). 파사산 정상(해발높이 230m)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1천800m가량 이어진 신라 시대 석축산성을 걷노라면 주변의 산야와 어우러진 남한강의 장엄한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막국수촌에서 200m 정도 떨어진 이포보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남한강의 풍경도 아름답다. 유람선 모양의 이 전망대에서는 바로 앞의 이포보는 물론 이포대교를 관망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당남리섬을 산책하는 것도 권할 만하다. 메밀밭 등 주변 풍광을 완상하노라면 색다른 정감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강 건너의 이포나루터에 가면 옛 나루터의 흔적은 물론 이곳을 지나 영월로 유배 가던 조선 시대 단종의 통곡 소리가 애련히 들려오는 듯하다.

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 명성황후 생가, 신륵사, 고달사지 등의 관광지 역시 가볼 만하다. 이 가운데 신륵사는 남한강의 비경을 한눈에 완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명소인데, 이곳 일원에서는 10월 26일부터 사흘간 여주오곡나루축제가 열렸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ido@yna.co.kr

<연합뉴스,> 2018/11/16 16:4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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