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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조 감독 "성폭행 사건 비극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죠"

김미조 감독 "성폭행 사건 비극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죠"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비극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성폭행당한 중년 여성이 세상에 맞서 목소리를 내는 과정을 다룬 영화 '갈매기'의 결말은 해피엔딩과 비극 그 사이 어디쯤이다.

김미조 감독

'갈매기'를 연출한 김미조(32) 감독은 최근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성폭행 사건을 겪으면 대부분 '나만 조용히 있으면 아무도 모를 텐데'라는 생각을 하겠지만, 영화에서만큼은 다른 대안도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김 감독이 '힘찬 투쟁기'라고 소개한 영화는 일평생 수산시장에서 일해온 오복(정애화 분)이 술자리에서 성폭행을 당한 이후 아내이자 엄마, 동료라는 관계에서 요구되는 모습을 뒤로하고,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는 한 사람으로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벌이는 투쟁을 따라간다.

오복의 투쟁은 첫걸음조차 내딛기 쉽지 않다. 폐경까지 겪은 나이에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이 당혹스럽고, 행여나 결혼을 앞둔 딸에게 피해가 갈까 두렵다. 무엇보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가해자가 있는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

김 감독은 이런 오복의 상황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목소리 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뤄보고 싶었다고 했다. 중년 여성은 아내이자 엄마이기에 참고 희생해온 여성, 재개발을 앞둔 시장의 상인은 이해관계가 얽힌 공동체 안에서 목소리를 내기 힘든 개인의 모습이 반영돼 있다.

"결혼은 성인이 된 딸에게 엄마가 필요한 이벤트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오복은 목소리를 내기 힘들 수밖에 없죠. 또 재개발은 공동체의 이익이 가장 큰 목소리가 되는 이슈예요. 노량진 수산시장 때 칼부림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이런 사건을 보면서 '과연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가 걸려있을 때 소수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 '갈매기'

그러면서도 오복은 지극히 현실적인 중년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심란한 마음에 누워있다가도 배고프다는 딸의 말에 밥상을 차리고, 상견례 전에는 예비 사위를 깎아내리며 강한 척을 하다가도 막상 사돈 앞에서는 칭찬만 늘어놓는다. 영락없는 우리네 엄마의 모습이다.

김 감독은 "오복이 특수한 여성으로 보이기보다는 보편적인 모습으로 보이길 바랐다. 오복 안에 내포된 의미를 확장하고 싶었다"며 "오복이 술을 마셔서, 시장에서 일해서 성폭행을 당한 게 아니라 우리 엄마도 그런 일을 당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런 오복의 투쟁은 소극적으로 시작된다. 가해자인 기택에게 사과를 요구하며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지만, 직접 말하지 못하고 동료 상인을 통해 의사를 전달한다. 딸에게 사실을 털어놓은 뒤에도 "못 들은 걸로 해라", "아빠한테는 절대 말하지 말라"며 금세 후회한다.

하지만 오복은 이 투쟁을 절대 그만두지 않는다. 시장 상인들이 손가락질하고 외면해도, 남편이 "성폭행은 상대가 응하지 않으면 성립할 수가 없어"라며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을 해도 버텨낸다. 오히려 더 큰 목소리를 낸다. 김 감독은 이런 투쟁의 힘이 그간 억누르고 살았던 오복의 기질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원래 오복은 한 대 맞으면 너대로 갚아주는 옹골찬 기질이 있는 캐릭터다.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지만, 배움이 짧아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여기고 숨죽여 살아왔다"며 "그런 오복이 아이러니하게도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처음에는 가해자인 기택에게 사과만 요구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내면에 있던 기질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김미조 감독

물론 현실에서 오복처럼 투쟁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김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초반에는 비극적인 결말로 흐르는 이야기도 고려했다고 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읽은 둘째 언니가 "이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야?"라고 되물으면서 이야기의 흐름을 바꾸게 됐다고 전했다.

"해결책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이 이야기를 왜 꺼냈나 싶었어요. 이야기를 책임감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사실 비극적인 사건은 비일비재하잖아요. '비극적인 일이 있었는데, 정말 비극이지?'라고 말하는 영화가 아니라 '비극적인 일이 있었는데, 이 인물들은 어떤 선택을 했어'라며 대안을 제시해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28일 개봉한 영화는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중년 여성의 시각에서 성폭행이란 사건을 다루며 피해자에게 침묵을 요구하는 사회의 단면을 촘촘하게 들여다봤다는 평이 쏟아졌다. 김 감독은 앞서 단편영화 '혀'(2017), '혐오가족'(2019)에서도 여성이 마주한 성폭력을 다룬 바 있다. '혀'는 학생과 선생님 사이에서 벌어진 위계에 의한 성폭력, '혐오가족'은 변태 성욕자인 아빠의 과거 성추행 사건을 접한 가족들의 이야기다.

그는 "옛날부터 성폭행, 성추행 등의 화두에 관심이 많았다. 왜 이런 부당한 일이 자꾸 일어나는지 의문이 컸고, 분노도 있었다"며 "그런데 '갈매기'를 만들면서 어느 정도 이런 감정들이 해소가 됐다. 만약 비극으로 끝났으면 해소되지 않았을 테지만, 오복은 끊임없이 목소리를 낸다. 희망적인 투쟁을 보니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될 것 같다는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영화 '갈매기'

차기작으로 모녀 복수극을 준비하고 있다는 김 감독은 영화 '매드맥스'에 나오는 여성 캐릭터만큼 강한 여성상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감독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개인적으로 수동적인 캐릭터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강한 여성 캐릭터에 대한 갈증이 있죠. 여성 감독을 표현할 때 섬세하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장르와 장르를 넘나드는 감독이 되고 싶어요. 여성 감독도, 남성 감독도 아닌 김미조라는 사람으로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싶다는 바람이 있어요."

aeran@yna.co.kr

ㅡ[연합뉴스]ㅡ202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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