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노겸 한국축산데이터 대표 편집자 주(註)= 역사는 짧아도 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startup). 이런 스타트업들이 맘 놓고 꿈을 펼칠 수 있는 창업 환경 조성은 국가의 미래 성장 동력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한국엔젤투자협회(회장 고영하)의 추천을 받아 매달 유망한 스타트업을 한 곳씩 소개한다.
국내 축산농가 대부분은 소나 돼지를 키울 때 항생제를 습관처럼 쓰고 있다. 질병에 걸리지 않게끔 병균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항생제는 질병에 걸렸을 때만 치료제로 써야 한다. 설사 병균은 죽이더라도 돼지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성장이나 출산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항생제를 오래 쓰면 면역력이 떨어지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항생제가 듣지 않는 슈퍼 박테리아가 생길 우려도 크다. 또한, 잔류 항생제는 돼지고기를 먹은 사람에게도 옮겨질 우려가 있다. 낙농 선진국인 독일과 덴마크 등지에선 이미 1990년대에 수의사 처방 없이 사료에 항생제를 섞어 가축에 먹이는 것을 법으로 금지했다. 우리나라도 다소 늦었지만 2011년에 항생제 남용을 막는 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법에 저촉됨에도 수십 년간 이어진 항생제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항생제 남용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상당한 데도, 국내 축산농가의 항생제 사용량은 낙농 선진국의 10배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6월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촌융복합산업 청년창업 사업모델 공모전’을 개최했다. 총 134개 팀이 참여한 가운데 우승은 한국축산데이터(대표 경노겸)에 돌아갔다. 한국축산데이터는 항생제 사용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도 건강한 돼지를 기르는 획기적 방법을 제시해 우승을 거머쥐었다. 경노겸 대표는 “돼지를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깨끗하고 넓은 축사에서 방사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국내 축산농가의 실정으로는 방사가 어려운 만큼, 어떻게 하면 밀집사육 환경에서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밝혔다.
경노겸 대표 카이스트에서 빅데이터로 석사 학위를 받고 서울대에서 생물정보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경 대표는 30년 경력의 수의사, 건국대 축산학과 교수 등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항생제를 쓰지 않으면서도 돼지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을 연구했다. 그렇게 나온 게 면역요법이다. 돼지의 혈액을 두 달 혹은 반기에 한 번씩 추출해 셀 검사와 DNA 검사를 시행하면, 건강 상태와 면역력 수치를 알 수 있다. 상태에 맞춰 적절한 면역제를 처방하면 돼지의 면역력 임계치가 올라간다. 건강한 사람이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다. 병에 걸리지 않으니 항생제를 쓸 일도 없다. 일종의 영양제라 할 수 있는 면역제는 독자 개발했다. 해외의 우수 면역제에 들어가는 약제와 자체적으로 연구한 고유 약제를 섞어 효능을 배가시켰다. 돼지의 생산성을 측정하는 지표로 ‘MSY’란 게 있다. 어미 돼지가 1년간 새끼 돼지를 낳아 시장에 판매하는 비율이다. 이 지표는 지금이나 15년 전이나 같지만, 면역요법을 받은 돼지는 1.3~1.5배 증가했다. 건강한 어미 돼지가 건강한 새끼를 낳는 선순환이 이뤄져서다.
공동창업자인 송신애 CPO(최고제품책임자). 서울대 경제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고, 빅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한 창업 경력이 있다. 한국축산데이터 제공 실험을 시작한 지 1년6개월여 만에 관리하는 돼지는 1만6천여 마리로 급증했다. 축산농가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진 덕분이다. 경 대표는 “비싼 항생제 구매비용이 줄고 MSY가 증가해 축산농가의 만족도가 대단히 높다”며 “최근 축산농가들의 요청으로 이곳저곳에 세미나를 다니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고 밝혔다. 한국축산데이터는 ‘팜스플랜’이라는 브랜드로 연말까지 돼지고기 유통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육질은 이미 도축업계에서 수준급으로 인정받았다. 경 대표는 “항생제를 거의 쓰지 않은 프리미엄 돼지고기를 합리적 가격에 유통할 계획”이라며 “소비자에겐 건강한 고기를, 축산농가엔 보다 높은 수익을 드릴 것”이라고 포부를 내비쳤다. 김영대 기자 Lonafree@yna.co.kr
<연합뉴스> 2018/09/03 10:30 송고 ㅡCopyright ⓒ OTOT -오티오티 [신문] 무단전재 배포금지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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