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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뒷맛] '국물 흥건' 파스타는 파스타?

(서울=연합뉴스) 조성미 기자 = 한국인의 국물 사랑은 각별하다. 요즘은 좀 줄었지만 국이 없으면 밥을 먹지 못한다는 이들도 있고, 분식집에서 김밥을 한 줄 먹을 때도 된장국을 곁들인다.

이러한 식습관은 한식이 아닌 음식을 먹을 때도 영향을 미치곤 한다.

대표적인 예로 소스가 국물처럼 흥건하게 조리된 한국식 파스타가 있다.

소스 양이 많은 한국 레스토랑의 로제 파스타

파스타의 본고장 이탈리아 출신 요리사의 눈에 한국식 파스타는 어떻게 비칠까.

이탈리아 북부 출신으로 파스타에 대해 소개하는 '파스타 에 바스타'라는 책을 한국서 펴내기도 한 파올로 데 마리아 쉐프는 11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소스 양이 많은 한국식에 대해 "파스타라는 음식에 대해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탈리아 음식은 본래 지중해식 건강한 식단이어서 신선하고 좋은 재료로 파스타를 만들면 국물에 연연하지 않아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서 "크림을 과다하게 쓰고 국물이 많은 파스타는 배만 채우려는 시도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한국 소비자의 입맛은 이탈리아 정통과 점점 더 멀어지는 모양새다.

국물이라고 할 것도 없이, 면에 흡수된 뒤 살짝 배어 나올 만큼의 소스만 있는 정통 이탈리아식보다 자작한 소스에 면이 잠길 듯 나오는 파스타가 대중적으로 널리 소비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뜨거운 뚝배기에 한가득 국물과 면을 담아내는 '뚝배기 파스타'도 인기를 끌고 있다.

뚝배기 파스타는 방송인 박나래씨가 2016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비법 요리로 소개하기도 했다.

인스타그램에서 '#뚝배기 파스타'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

국물을 좋아하는 한국인 입맛을 사로잡은 이 음식은 파스타 음식점의 한 메뉴로 자리 잡은 것을 넘어서 '뚝배기 파스타' 전문점 형태로도 출현했다. 국물을 포함해 양이 많으면서도 저렴한 편이라 주머니가 가벼운 20대가 많은 대학가 등을 중심으로 입점해 있다.

경기도 부천에 소재한 '뚝배기 이탈리아' 장문석 팀장은 "손님들이 음식을 끝까지 따뜻하게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만족을 느낀다고 말한다"며 "퓨전 파스타라고 충분히 설명하고 면이 국물에 붇지 않을 정도로 조리해 내기 때문에 별다른 불만 사항을 들어본 적은 없다"고 전했다.

회사원 이모(38)씨도 "지인들과 만날 때 양식을 먹으려면 파스타 집에 주로 가는데 소스가 적어 뻑뻑한 것보다 국물이 많은 편이 입맛에 맞는 것 같다. 뚝배기 파스타를 접해 본 적은 아직 없지만 한번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아무리 뜨끈한 국물을 좋아하는 한국인이라지만 음식 본래의 모습에서 상당히 멀어져 버린 퓨전 음식의 등장에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대학생 고영규(27)씨는 "처음 접했을 때 뚝배기 안에서 소스가 끓는 모습을 보고 파스타는 그렇게까지 뜨거운 음식이 아니어서 조금 당황했다"며 "음식이 나온 직후에 입안에 넣으니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거웠고 그 열기 때문인지 소스의 맛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고 평했다.

고씨는 "음식을 따뜻하게 유지해주는 뚝배기에 파스타를 담는다는 생각은 기발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사실 파스타가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먹는 음식은 아니기 때문에 굳이 그런 시도를 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고 덧붙였다.

양식 전문가들도 지나친 한국화로 인해 파스타가 가진 고유한 특징이 사라지는 점을 이야기했다.

서래마을에서 '테이블포포'와 '파스타포포'를 운영하는 김성운 쉐프는 "한국식 파스타는 투가리(뚝배기의 방언)로 찌개나 라면 등을 끓여 먹길 좋아하는 우리 식문화에 착안한 것으로, 우리 것에 대한 향수 같은 정서와 파스타라는 음식을 결합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러나 파스타는 올리브유 같은 오일류와 면과 소스가 하나가 되어 어우러진 에멀전(emulsion) 상태가 주는 맛이 최상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탈리아 현지 레스토랑의 카르보나라 파스타

소스의 에멀전 또는 유화(乳化)란 재료에서 나온 수분이나 유크림 등 기름이 아닌 물질과 올리브유, 동물성 지방 등 기름 성분이 적정한 온도 아래서 고르게 잘 섞여 분리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에멀전이 잘 된 소스는 점도가 높아 면에 흡착, 흘러내리지 않기 때문에 면을 먹을 때 소스의 풍미가 풍부하게 느껴지도록 한다.

파스타를 삶을 때 녹말 성분이 녹아든 면수를 파스타 소스에 약간 넣어주는 이유도 수분과 유분의 매개체로서 에멀전을 돕기 위해서다. 이탈리아 현지의 카르보나라 소스는 우리나라에서처럼 크림 위주가 아니라 계란 노른자 위주여서 찐득하게 면에 착 달라붙어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소스의 양이 많으면 수분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에멀전 상태에 도달하기보다 농도가 묽을 수밖에 없다. 즉, 면과 소스가 한 몸이 되어 면의 식감과 소스에 녹아든 재료의 풍미를 한입에 즐긴다는 이탈리아식 파스타의 본령과 우리식 국물 파스타엔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

파스타 본래의 모습과는 멀어졌지만, 국물이 많은 한국식 파스타 역시 다양성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전문가 목소리도 있다.

청강문화산업대 푸드스쿨에서 서양 요리를 가르치는 신재근 교수는 "햄버거가 더는 미국 음식이 아니고 프라이드치킨이 원래 우리 고유의 음식이 아니었지만 우리의 방식으로 발전해 세계로 나갔듯, 파스타도 더는 이탈리아 음식이라고만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중세 시대 이탈리아 책에 '고대 로마 음식만 최고라고 고집할 게 아니라 우리 중세인의 입맛도 그에 뒤지지 않는다'는 문구가 나오는 것처럼 음식이나 사람들의 입맛은 변하는 것"이라며 "명란젓, 간장 등을 넣어 포크가 아닌 젓가락으로 먹는 일본식 파스타가 '와(和)파스타'라는 새로운 장르가 된 것과 같이 국물 파스타, 뚝배기 파스타는 우리식 파스타"라고 덧붙였다.

csm@yna.co.kr

연합뉴스,  2020/01/11 06: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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