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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기행] '국수주의자'에게 권한다…영월 강원토속식당 칡국수
(영월=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칡은 두려운 존재다. 그 생명력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잠시만 방심하면 스페이드 모양의 칡 잎들이 밭을 뒤덮는다. 이런 칡의 생명력을 닮고 싶어서일까. 우리나라에서는 예전부터 칡을 재료로 한 많은 음식이 만들어져 왔다. 칡국수도 그 가운데 하나다.

영월 고씨동굴 앞 강원토속식당의 칡국수 [사진/성연재 기자]

영월 고씨동굴 앞 강원토속식당의 칡국수 [사진/성연재 기자]

음식 기행 취재는 의외로 까다롭다. 취재를 꺼리는 식당들이 많기 때문이다. 취재를 위해 여러 군데 연락을 취하다 보면, '광고 안 한다'는 시큰둥한 대답을 듣기 일쑤다. 전화를 끊어버리는 경우까지 겪는다.

이번 강원도 영월의 음식 취재도 마찬가지였다. 현장에 도착한 뒤 섭외했던 식당 취재가 불가능해지자, 급하게 영월군청에 SOS를 쳤더니 고씨동굴을 가보라 한다. 칡국수가 유명하단다.

칡냉면이냐고 다시 물었는데, 칡을 재료로 한 따스한 온면이라 한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출발해 가는데 뭔가가 이상했다. 자꾸만 영월을 벗어나길 종용하는 것이다.

아뿔싸 고씨동굴이 아니라 고수동굴을 검색한 것이다. 생각해보니 단양 고수동굴과 이름도 비슷하다.

이렇듯 헷갈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고씨동굴을 가자면서 단양 도담삼봉과 함께 다녀오겠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많다. 거리도 30㎞ 남짓인 데다, 차로도 40여분 거리에 불과하다. 모른 채 가다가 뒤늦게 깨닫고 차를 돌렸다.

◇ 기념품점에서 칡국수로 전향

광장에 자리 잡은 강원토속식당 [사진/성연재 기자]

고씨동굴은 남한강 건너편에 매표소가 있다. 그리고 그 매표소 앞에 식당가 등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은 '강원토속식당'이다. 식당으로 들어서니 주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주방이 먼저 손님을 맞이하는 구조다. 왼쪽으로 난 창으로 무엇을 하는지 훤히 들여다보이니, 깨끗할 수밖에 없다.

할머니가 서서 조리하고 계신다. 1995년부터 이 식당을 운영해 온 성숙자(71) 씨다.

처음에는 고씨동굴을 찾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기념품 가게를 했는데, 뭔가 더 나은 사업을 구상하다 보니 칡국수가 떠올랐다고 한다.

주변에 널려있는 칡을 재료로 국수를 만들어 팔았는데 반응이 좋아 지금까지 가게를 계속해 오고 있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칡은 찬 성분이 있어 두통과 주독, 소갈에 효능이 있다 한다. 특히 칡국수는 더운 여름날 열을 내려줘 여름에도 잘 팔린다고 한다.

양해를 얻어 주방으로 들어갔더니 육수 위에 모두 3개의 타이머가 붙어있다.

육수를 끓이는 불을 다루는 것은 조카다. 오랜 기간 쌓인 비결도 이제 데이터화했다.

고씨동굴 매표 시간이 지난 터라 손님이 많지 않다. 식당 구석에 앉은 중년 커플에게 뭘 먹는지 물어보니 역시 칡 국수다. 몇 년 전 맛을 본 뒤로 1년에 몇 번씩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양과 맛 둘 다 만족시키는 감자전 [사진/성연재 기자]

양과 맛 둘 다 만족시키는 감자전 [사진/성연재 기자]

◇ 칡국수와 감자전, 묵무침…모두 맛나

칡국수를 시켜놓고 메뉴를 보니 감자전이 있다. 감자전도 시켜보기로 한다. 그러다 보니 중년 커플이 먹고 있는 묵무침도 먹고 싶어졌다. 결국은 다 시켰다. 이것이 실수였다.

칡국수보다 먼저 나온 것은 바로 주황색 당근과 파란 부추가 들어간 예쁜 색감의 감자전이었는데, 젓가락으로 집는 순간 뭔가 묵직하다.

자세히 살펴보니 한 장이 아니라 똑같은 감자전이 밑에 한장 더 숨어있다. 감자전을 시키면 2장이 나온다. 감동의 순간이었다. 곧바로 칡국수가 배달됐다.

상큼한 맛을 내는 묵무침 [사진/성연재 기자]

상큼한 맛을 내는 묵무침 [사진/성연재 기자]

칡국수는 감자와 함께 김치와 달걀지단, 참깻가루와 양념장이 소복하게 들어가 있다. 그 위에 김 가루가 뿌려져 있다.

한입 들이켰더니 면발은 부드럽고 국물은 구수한 진국이다. 할머니에게 물어봤더니 육수는 특별한 재료를 쓰지 않고, 칡 국수물을 그대로 쓴다고 한다.

따로 육수를 내지 않더라도 칼국수 면발에서 우러난 칡 성분이 진한 육수를 만드는 것이다. 멸치 등 해산물이나 육류로 만든 육수가 아니라 칡 국물에 조선간장과 소금만으로 간을 맞춘 육수다.

걸쭉한 국물 맛을 즐기며 부드러운 면발을 흡입하다 보니 어느새 바닥이 드러났다.

부지런히 주방을 누비는 성숙자 할머니 [사진/성연재 기자]

부지런히 주방을 누비는 성숙자 할머니 [사진/성연재 기자]

그새 묵 무침이 배달됐다. 다소 강한 듯한 매운 양념과 어우러진 상큼한 맛이 침샘을 자극한다. 조금 전 썰어 넣은 오이와 양파가 맛나게 어우러진다.

문제는 너무 많이 시켜 감자전과 묵이 남았다. 포장을 부탁했더니 따로 잘 싸주신다.

다 먹고 나오는데도 여전히 주인 할머니는 서서 직접 감자전을 부치고 계신다.

할머니는 요즘도 새벽 4시에 일어나 그날 쓸 반죽을 손수 만든다. 하루에 400∼500그릇 분량이며, 여름 휴가철엔 600그릇 분량으로 늘어난다.

할머니는 다른 것은 몰라도 감자전만큼은 꼭 자신이 부친다고 주먹을 불끈 쥐고 한마디 한다. 얇은 팔뚝에 솟은 힘줄이 칡 줄기처럼 강해 보였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polpori@yna.co.kr

<연합뉴스> 2019/08/14 08:0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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