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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먹방] 전통주 업계의 '퍼스트 펭귄'

[酒먹방] 전통주 업계의 '퍼스트 펭귄'

(용인=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용인에 있는 양조장 술샘은 전통주 업계의 '퍼스트 펭귄'을 자처한다.

그다지 길지 않은 업력에도 불구하고 술샘이 전통주 시장을 이끄는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전통의 굴레에만 갇혀있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해왔기 때문이다.

술샘에서 만드는 다양한 전통주들이 양조장 선반에 진열되어 있다. [사진/조보희 기자]

◇ 홍국쌀 막걸리, 떠먹는 이화주…전통의 현대화

새빨간 색상으로 눈길을 끄는 막걸리 '술취한 원숭이', 밀누룩이 아닌 쌀누룩으로 빚어 글루텐이 없는 막걸리 '아임프리', 전통 양조법을 그대로 살려 빚은 약주 '감사'와 증류주 '미르', 고려시대부터 즐겨 먹던 떠먹는 술을 재현한 '이화주', 증류주에 오미자를 침출해 만든 리큐르 '술샘 16', 쌀로 만든 여러 가지 식초와 누룩소금…

술샘의 제품은 모두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다.

막걸리부터 약주, 증류주, 리큐르, 이화주에 이르기까지 쌀로 만들 수 있는 전통술은 모두 만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술 하나하나가 지닌 '면모'와 '경력'도 예사롭지 않다.

술샘의 출발점이 됐던 증류주 '미르'는 2018년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으면서 이름을 널리 알린 술이다.

아무런 첨가물 없이 전통 누룩과 멥쌀, 물로만 세 차례 빚은 삼양주를 20일가량 발효시킨 뒤 맑은 부분만 증류해 항아리에서 1년 이상 숙성시킨다.

알코올 도수에 따라 '미르 25', '미르 40', '미르 54' 세 가지로 출시된다.

증류주 '미르'는 전통 항아리에서 1년 이상 숙성한다. [사진/조보희 기자]

청량하고 깔끔한 맛의 비결은 재료와 증류 방식에 있다.

감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소규모 양조장들이 단맛을 내기 위해 찹쌀과 멥쌀을 섞어 술을 빚는 경우가 많지만, 미르를 비롯한 술샘의 모든 술은 찹쌀이 아닌 멥쌀로만 만든다.

신인건 대표는 "찹쌀은 달고 부드러우면서도 막혀 있는 느낌이 드는 반면, 멥쌀은 드라이하고 날카로우면서도 확장성이 있다"면서 "지게미를 모두 제거하고 맑은 술만 증류시키고 증류할 때 처음 나오는 술과 나중에 나오는 술은 버리는 것도 잡내 없이 깔끔한 맛을 내는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대형 증류 시설을 갖춘 증류실. 신인건 대표가 증류주 제조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조보희 기자]

2015년 우리술 품평회에서 장려상을 받은 이화주는 요구르트처럼 숟가락으로 떠먹는 술이다.

고려시대부터 양반가에서 즐겨 먹었던 술로, 술샘이 처음 되살려 전통주 시장에 선보였다.

이화주는 직접 빚은 쌀누룩에 쌀과 아주 소량의 물을 넣어 발효시킨다.

쌀을 고두밥 형태로 넣지 않고 구멍떡이나 백설기로 만들어 누룩과 치대 빚는 것이 특징이다.

들어가는 쌀 양에 비해 나오는 술 양이 아주 적어 100㎖ 한 통에 7천원이나 하지만, 2019년 개수로는 술샘에서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인기 제품이다.

요구르트처럼 새콤달콤하고 유산균이 많이 들어 있어 장에 좋다고 한다.

신 대표는 "쌀로 떡을 만들어 누룩과 치대는 것이 힘들어 만들기 쉽지 않은 술"이라며 "이화주를 되살리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고 말했다.

홍국쌀로 빚은 막걸리 '술취한 원숭이'를 병입하고 있다. [사진/조보희 기자]

새빨간 빛깔이 인상적인 '술취한 원숭이'는 술샘에서 요즘 가장 '뜨거운' 술이다.

2016년 출시 이후 전통주를 즐기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꾸준히 호응을 얻었는데, 최근 방송을 타면서 수요가 급증해 지금 주문하면 한 달 이상 기다려야 받아볼 수 있다.

이 술은 술샘이 2016년 원숭이해를 기념해 처음 선보인 막걸리다.

토마토 주스나 딸기주스를 연상시키는 새빨간 색상 때문에 색소나 첨가물이 들어갔을 것 같지만, 이 술 역시 쌀과 누룩, 물로만 빚는다.

빨간색을 내는 주인공은 다름 아닌 홍국쌀이다. 홍국쌀은 일반 쌀에 홍국(모나스쿠스)으로 불리는 곰팡이를 넣어 발효시켜 붉은빛을 띄는 쌀이다.

발효과정에서 분비되는 모나콜린 케이(monacolin-K)라는 물질이 콜레스테롤을 분해하는 것으로 알려져 약재나 건강식품에 널리 쓰인다.

술샘은 첨가물 없이 누룩과 쌀, 물만으로 술을 제조한다. (왼쪽부터)누룩, 홍국쌀, 멥쌀 [사진/조보희 기자]

지금은 다른 양조장에서도 홍국쌀 막걸리가 나오고 있지만, 홍국쌀로 빚은 술을 처음 선보인 것은 술샘이었다.

'술취한 원숭이' 역시 밑술을 빚은 뒤 고두밥을 두 차례 첨가하는 삼양주 방식으로 빚는데, 마지막 술을 빚을 때 홍국쌀을 일반 쌀과 같이 쪄서 넣는다고 한다.

여러 차례 시험한 결과 알코올 도수가 10도 내외일 때 가장 맛이 좋아 도수는 10.8도로 맞췄다. 108번뇌를 10분의 1로 줄여준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홍국쌀로 빚어 붉은빛을 띄는 막걸리 '붉은 원숭이' [사진/조보희 기자]

생막걸리인 '술취한 원숭이'에 살균 과정을 거친 '붉은 원숭이'도 있다.

발효과정을 거친 홍국쌀로 빚어서인지 살균 막걸리가 지니는 특유의 살균취가 없어 '붉은 원숭이'도 '술취한 원숭이'만큼 많이 팔린다고 한다.

◇ 고속 성장 비결은 끊임없는 도전과 시도

술샘은 2012년 설립된 양조장이다. 신인건 현 대표를 비롯해 한국가양주연구소에서 양조를 같이 배운 동기생 5명이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학생부터, 전업주부, 은퇴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력을 지닌 5명이 모여 서울 양재동 20평 사무실에서 공방처럼 시작했는데, 사업이 커져 지금은 전통주 업계를 이끄는 양조장으로 자리 잡았다.

신 대표는 자동차업계에서 10년, 건축업계에서 10년을 일한 뒤 귀농해 농사를 짓다 취미 삼아 양조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술샘 양조장 건물. 양조장과 카페, 체험공간 등으로 구성돼 있다. [사진/조보희 기자]

술샘은 코로나19 여파가 컸던 작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매출이 200%씩 증가할 정도로 높은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다.

현재 생산량은 일주일에 5천∼6천병에 달한다.

술샘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전통주 시장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양조의 기본을 지키면서도 전통의 굴레에만 묶여있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해왔기 때문이다.

홍국쌀 막걸리나 이화주의 성공이 이를 보여준다.

신 대표는 "누룩취를 싫어하는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춰 개량 누룩 쓰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면서 "장기 숙성이 필요한 증류주 이외의 술은 항아리보다 위생적이고 온도 조절이 쉬운 스테인리스 발효조를 쓰는 등 전통을 무조건 고집하지만은 않는다"고 했다.

대형 스테인리스 발효조가 늘어서 있는 발효실. 막걸리와 약주는 온도 조절이 용이하고 위생적인 스테인리스 통에서 발효·숙성된다. [사진/조보희 기자]

술샘은 수요 증가에 맞춰 대량생산 시스템을 갖춰 가면서도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올해에는 막걸리가 아니지만 탄산이 있는 신개념 전통주와 감압 증류 방식으로 은은한 향을 살린 '미르 라이트'를 선보일 예정이다.

신 대표는 "프리미엄 전통주 시장 주요 소비층인 20∼30대의 기호에 맞는 신제품을 계속 내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말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3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isunny@yna.co.kr

ㅡ[연합뉴스]ㅡ2021.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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