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돌하르방] ② 지갑 안 여는 관광객…애타는 기념품 업계
제주 경제의 핵심인 관광산업이 풀기 어려운 여러 도전 과제에 직면해 있는 가운데, 제주가 가진 천혜의 기후와 자연환경이라는 관광자원에 '금상첨화'가 될 제주만의 살거리를 개발하는 것 역시 해묵은 숙제입니다. 제주의 관광기념품은 돌하르방과 감귤초콜릿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수십 년째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제주=연합뉴스) 백나용 기자 = "살 만한 게 없네요." 지난 22일 오후 제주시 원도심의 대표적 상점가인 칠성로 쇼핑거리의 기념품 판매점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 왕이린(26·상하이)씨는 "뭘 살 거냐"는 질문에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판매점에는 인형, 장식품, 열쇠고리, 마그넷, 소주잔, 안마봉에 심지어 강아지 장난감과 밥주걱까지 제주 상징물을 캐릭터화해 만든 기념품들이 진열돼 있었다. 원산지는 대부분 '중국'(MADE IN CHINA)이라고 적혀 있었다. 기념품 중 열쇠고리와 마그넷만 만지작거리던 그는 고심 끝에 5천원짜리 마그넷 하나만 골라 결제했다. 왕씨는 "여행 마지막 날이라 여행을 추억할 기념품을 사러 왔는데 마음에 드는 물건이 없다"며 "잡화류는 예쁘긴 한데 꼭 여기에서 안 사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에서 산 물건 중 가장 맘에 든 물건으로 올리브영에서 산 마스크팩 등 화장품을 꼽았다. 3박 4일간 여행 일정 중 기념품에 쓴 돈은 마그넷 값 5천원이 전부라고 대답했다. 다른 곳도 상황은 비슷했다. 시내면세점과 호텔이 모여있어 관광객이 많이 다니는 제주시 연동 누웨모루거리의 한 기념품 판매점에서 만난 대표 40대 A씨는 "구경만 하는 손님들이 더 많다"고 대답했다. A씨는 "감귤이나 녹차, 땅콩을 주재료로 하는 과자나 초콜릿이 그나마 잘 팔린다"며 "돌하르방 열쇠고리나 장식품 같은 기념품 판매만으로는 가게 운영이 안 돼 제주와는 상관없는 산리오나 잔망루피 등 인기 캐릭터 문구류나 그릇까지 팔릴 만한 건 모두 팔고 있다. 이래서는 겨우 임대료 내고 생활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근처 다른 기념품 판매점을 2년간 운영하고 있다는 40대 B씨는 "위탁 판매 방식이라 초기 비용이 적게 들고, 물건이 팔리지 않아도 재고 부담이 없어 창업했는데 실상은 하루 10만원 팔기도 어렵다"며 "오늘도 영업을 시작한 지 2시간 넘었지만, 구경만 하고 가는 손님뿐이어서 아직 개시도 못 했다"고 애타는 상황을 토로했다. 그는 "게다가 그사이 걸어서 1분 남짓한 거리에 비슷한 물건을 파는 기념품 판매점이 3곳이나 생기면서 더 힘들어지고 있다"며 "저녁 시간대 주변 호텔에서 묵는 관광객을 겨냥한 와인 등 주류 판매로 겨우 가게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이 같은 상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0년대 들어 내외국인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제주관광이 호황을 이어가 면세점이나 대형마트는 큰 덕을 봤지만, 기념품업계는 장기간 불황에 허덕이고 있다. 지난 2012년 제주관광학회 하계 학술대회에서 민명원 제주도관광협회 수석부회장은 "올해 중국인 관광객들이 쏟아져 들어왔지만 정작 도내 기념품 사업자들은 30년 만에 최악의 불황을 맞은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당시도 행정·재정적 지원 미흡, 새로운 상품 개발 등 자구노력을 하지 않은 채 중국산 상품에 의지하는 상황, 업체 난립으로 인한 제 살 깎아 먹기식 경쟁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십여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아 아직도 제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세계 어디서나 비슷한 물품을 파는 면세점에서 가장 많은 돈을 쓰고 있다. 
실제 26일 제주도관광공사 발간 '2023 제주도 방문관광객 실태조사'에 따르면 내국인 관광객이 쇼핑하는 데 돈을 가장 많이 쓴 곳은 면세점(65.4%·중복 응답)이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쇼핑비를 가장 많이 지출하는 곳은 올리브영과 다이소, 아트박스 등 로드숍 영향으로 시내상점가가 1위(65.5%)를 차지했다. 과거 1위를 차지해온 면세점은 59.7%로 2위로 밀려났지만, 여전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주요 쇼핑 품목도 내국인 관광객은 간식류가 63.7%(중복응답), 농수축산물이 57.6%로 먹거리 구매 비중이 가장 높았다. 관광기념품 중 하나인 전통 민예품 구매 비중은 1.5%에 그쳤다. 외국인 역시 간식류가 63.7%로 쇼핑 품목 1위였다. 향수·화장품은 56.6%로 2위였고, 전통 민예품은 14.6%로 5위에 머물렀다. 사단법인 제주관광학회는 제3차 제주도관광진흥계획(2019∼2023년) 수립 용역 보고서에서 관광객은 일반적으로 쇼핑을 할 때 관광지 방문을 기념하거나 지인에게 선물하기 위해 상품을 구매하지만, 현재 제주에서 판매되는 상품 대부분이 제주를 기억하고 상징할 수 있는 토속성이나 매력이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관광기념품은 지역의 고유한 특성과 상징성을 갖고, 오래 간직하고 싶은 가치를 갖고 있어야 하는데 제주에서 판매되는 기념품은 여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전국적으로 인기가 높은 감귤이나 옥돔·갈치 등 특산물이 있지만 외국 관광객은 자국으로 가져가기가 힘들고, 기념품 판매점에 입점한 상품이 면세점에 입점한 상품과 중복돼 희소성·차별성이 부족하다. 제주관광학회 관계자는 "제주를 상징하는 토속 기념품은 제작비용 부담으로 제주도에서 생산되는 품목이 매우 제한적이고 상품의 유형도 여행 소비자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며 "제주 관광객 구매 패턴에 맞는 상품 제작 방법에 대한 고민과 함께 제주를 상징하는 기념품을 제작할 수 있는 특화 구역 조성과 전문인력 개발 등이 요구된다"고 제언했다. 
ㅡ[연합뉴스]ㅡ2025.02.26 dragon.m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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