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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에 숨은 '마약성진통제'…중독의 고통은 동병상련"

"마약에 숨은 '마약성진통제'…중독의 고통은 동병상련"

마약성 진통제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마약이라고 하면 흔히 대마초나 필로폰, 코카인 등을 떠올린다. 하지만, 현재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는 마약의 상당수는 병원에서 환자의 통증을 줄이는데 처방되는 마약성 진통제다.

마약성 진통제는 양귀비와 같은 천연 식물에서 추출한 '모르핀'과 실험실에서 이와 비슷한 물질을 합성해 만든 '펜타닐'로 나눌 수 있다.

이들 마약성 진통제가 환자의 뇌세포 내 '오피오이드'(opioid) 수용체와 결합하면 도파민 생성을 촉진함으로써 통증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마약성 진통제가 흔히 오피오이드라고 불리는 것도 이런 이유다.

원래 마약성 진통제는 암 말기에 극심한 통증을 겪는 환자들을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암 환자뿐만 아니라 만성통증과 정신질환, 외상 등의 비암성 환자들에게도 마약성 진통제 처방이 확산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국제학술지(Therapeutic advances in drug safety, British journal of anaesthesia)에 발표된 여러 편의 논문을 종합하면, 2002~2015년 사이 국내 마약성 진통제 처방은 6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또 부적절한 마약성 진통제 처방은 2012년 13.2%에서 2018년 19.4%로 증가했다.

문제는 마약성 진통제를 비암성 환자가 오남용하게 되면 도파민 분비 조절 기능이 망가지면서 돌이키기 힘든 중독에 이르는 것은 물론 면역 기능이 떨어지고, 심장질환 등에 의한 사망률도 높아진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장기간의 마약성 진통제 처방이 치매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됐다.

국내 연구팀이 2022년 발표한 논문을 보면, 인구 1만명당 연간 마약성 진통제 처방 건수는 2008년 501건, 2009년 5천727건, 2012년 1만6천838건, 2013년 2만6천243건, 2015년 4만727건으로 7년 새 81배나 증가했다. [논문 발췌]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 최근호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분당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송인애·오탁규 교수 연구팀이 건보공단 청구자료에서 2010~2015년 비암성 통증으로 치료받은 것으로 확인된 환자 126만1천682명(평균 나이 50세)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이런 연관성이 확인됐다.

이 연구에서는 전체 분석 대상자의 1.7%(2만1천800명)가 암이 아닌데도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비암성 통증이 있는 성인 환자에서 90일 이상 지속해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하는 그룹의 치매 발생률을 복용하지 않는 그룹과 비교했다.

이 결과, 5년의 추적 관찰 기간 마약성 진통제 사용그룹의 치매 유병률은 11.0%로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지 않은 대조군의 2.6%보다 크게 높았다. 치매의 유형은 혈관성 치매보다 알츠하이머 치매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송인애 교수는 "장기간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한 그룹의 치매 발병률은 대조군보다 15%가량 높게 나타났다"면서 "알츠하이머 발병과 마약성 진통제의 작용 기전을 밝히는 것은 물론 치매 발병률을 높이지 않는 새로운 진통제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제학술지(Advanced science) 최신호에는 대표적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을 임신부가 만성적으로 사용하는 경우 태아(배아)의 신경 발달이 저해될 수 있다는 내용의 오가노이드(유사체) 실험 결과가 공개됐다.

최근 대한통증학회가 개정한 마약성 진통제 사용지침에서는 만성 비암성 통증에 대한 마약성 진통제 처방이 의도치 않게 현재의 유행에 기여했을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에 따라 학회는 의사가 통증 치료를 시작할 때 환자와 철저한 논의를 거쳐 결정하고, 마약성 진통제의 '유익-위험' 비율이 환자에게 유리하지 않은 경우 마약성 진통제 치료를 중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비암성 통증 치료의 1차 치료법이 비마약성 치료제인 만큼, 먼저 비마약성 치료제 사용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신건강 측면에서도 마약성 진통제 처방 증가에 따른 중독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마약성 진통제 처방을 줄이는 것과 동시에 이미 중독된 환자들에 대한 치료도 병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 오키나와 다르크(DARC·약물중독재활센터)의 마쓰우라 요시아키 센터장[이해국 교수 제공]

최근 가톨릭대 중독연구소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일본 오키나와 다르크(DARC·약물중독재활센터)의 마쓰우라 요시아키(59) 센터장은 "일본에서는 10대, 20대를 중심으로 처방 마약 의존 현상이 크게 늘고 있다"면서 "이런 중독자들이 약물을 끊고 건강을 회복하는데 다르크 같은 시설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다르크는 일본에서 40년의 역사를 가진 약물중독 당사자 중심의 재활센터다. 마쓰우라 센터장처럼 다르크에서 재활 치료 후 회복한 약물 중독자가 스태프가 돼 또 다른 중독자의 회복을 돕는 것이다. 회원끼리의 만남을 통한 치료에 방점을 두고 있다. 시설은 전국에 93개가 있고, 회원은 2천명 정도라는 게 마쓰우라 센터장의 설명이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지금은 마약성 진통제의 오남용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본처럼 이미 약물에 중독된 환자들을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도 함께 고민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일본의 다르크는 중독자들끼리 서로 지지하고, 평등하게 주고받으면서 의료기관과 연계된다는 점에서 한국도 참고할만하다"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마약성 진통제 중독의 현실을 인정하고, 치료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bio@yna.co.kr

ㅡ[연합뉴스]ㅡ2024.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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