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1만개 메우고 순서 똑바로…8폭 병풍서 되살린 '특별한 날'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1826년의 어느 날, 평안 감영이 있던 평양 일대는 분주했다. 길목마다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종일 시끌벅적했다. 대동강 주변은 물론 당대 명소로 꼽히던 부벽루, 모란봉 기슭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시선은 젊은 두 선비에게 닿아 있었다. 평안도 지역 유생을 대상으로 열린 도과(道科·조선시대 각 도의 감사에게 명해 실시한 특수한 과거시험)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합격자를 위한 '특별한 날'이었다. 약 199년 전 평양에서 열린 잔칫날을 생생하게 기록한 조선시대 회화가 세월의 흔적을 딛고 본래 모습을 되찾았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과 삼성문화재단은 10일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최근 보존 처리를 마친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平安監司道科及第者歡迎圖) 8폭 병풍을 공개했다. 
미국 피보디에식스(Peabody Essex) 박물관이 소장한 병풍은 1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박물관에 따르면 1927년 조지 피보디와 W.C. 엔디콧 기금으로 구입한 유물로, 총 8폭으로 구성돼 있다. 대동강을 건너 평양성에 들어온 급제자 행렬의 모습부터 평양 일대에서 성대하게 열린 잔치 모습을 섬세한 기법과 정밀한 묘사로 담아냈다. 그림으로 남긴 기록인 셈이다. 김정희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이사장은 이날 열린 언론 간담회에서 "19세기 당시 평양 모습과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한 폭의 풍속화 같은 작품"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 병풍은 1994년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유길준과 개화의 꿈'에서 한 차례 선보인 적 있으나, 지금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당시 그림은 각각 분리돼 낱장으로 있었고, 손상되거나 훼손된 부분도 상당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충해(蟲害·벌레 먹음) 피해 또한 심각했다. 과거 그림의 바탕이 되는 종이 질을 좋게 하고자 쌀가루를 넣는 경우가 있는데, 이로 인해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2023년 11월부터 최근까지 약 1년 4개월간 보존 처리를 담당한 남유미 리움미술관 보존연구실장은 "그림 위로 벌레가 먹은 듯한 구멍이 1만개 가까이 있었다"고 말했다. "보존 처리 업무만 25년 가까이 했는데 이렇게 벌레 먹은 흔적이 많은 적은 처음이었죠. 숙련된 전문가 3명이 주말까지 매일 작업했는데도 구멍 메우는 데 3개월이 걸렸습니다." 8폭의 화면을 정확히 배열하는 것은 중요한 부분이었다. 제작 당시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 병풍은 접었다 펼치는 병풍 형태를 유지했으나, 이후 그림이 분리돼 액자처럼 각각 보관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술관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평양성도'(平壤城圖) 등을 참고해 급제자 행렬이 이동한 경로와 주요 전각의 위치, 행사가 열린 시간대를 추정해 순서에 따라 배열했다. 남 실장은 "기존에는 낱장으로 분리돼 있어 그림 순서를 알 수 없었다"며 "연구자들과 여러 차례 논의하고, 위성 지도까지 동원해 순서를 바로잡았다"고 설명했다. 세월의 무게를 덜어내고, 새로운 이름표를 단 점도 의미가 크다. 기존에는 평안감사가 잔치를 연다는 의미의 '평안감사향연도'(平安監司饗宴圖)라고 불렀으나, 미술관은 도과 급제자를 축하하는 자리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남 실장은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는 유일본"이라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평안감사향연도'에서는 평안감사만 등장하지만, 이 그림에는 급제자 2명까지 주인공이 3명이란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yna.co.kr/etc/inner/KR/2025/03/10/AKR20250310000851005_10_i_P4.jpg)
삼성문화재단은 2022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과 협약을 맺은 뒤, 보존 처리와 연구·조사를 해왔다. 사립 미술관이 국외 문화유산 보존을 지원한 첫 사례로, 재료비에만 1억원가량 들었다고 한다. 류문형 삼성문화재단 대표이사는 "나라 밖에 있는 우리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고 복원해서 전 세계 많은 사람과 (그 가치를) 공유할 수 있다면 의미가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린다 하티건 피보디에식스박물관장은 영상으로 전한 축하 인사를 통해 "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국제 협력의 힘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피보디에식스박물관이 소장한 활옷도 국내 전문가의 손을 거쳐 되살아났다고 밝혔다. 활옷은 조선시대 여성이 입던 예복 중 하나로, 붉은 비단 위에 다양한 문양을 수놓고 금박으로 장식한 옷이다. 피보디에식스박물관의 활옷은 18∼19세기 유물로 추정된다. 
박물관 측은 활옷을 입수한 경위와 관련해 "1927년 야마나카(山中) 상회가 기증했다"고만 밝혔다. 야마나카 상회는 일제강점기 당시 많은 한국 문화유산을 내다 판 업체로 알려져 있다. 보존 처리 작업을 맡은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은 소매 부분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김포 지역의 노비로 추정되는 '갑복'(甲福)의 이름이 적힌 추수 관련 기록 등도 찾아냈다. 옛 모습을 되찾은 조선 병풍과 활옷은 11일부터 4월 6일까지 리움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두 유물은 5월에 재개관하는 피보디에식스박물관 한국실 '유길준 갤러리'에서 주요 문화유산으로 소개될 예정이다. 피보디에식스박물관은 한국 문화유산을 디지털로 기록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ㅡ[연합뉴스]ㅡ2025.03.11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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