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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탄절 [聖誕節]

성탄절 [聖誕節]

정의
기독교의 창시자인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의 탄생 기념일. 성탄일(聖誕日), 크리스마스(Christmas)라고도 한다. 크리스마스는 영어이며 ‘그리스도(Christ)의 미사(mass)’라는 의미로 고대 영어인 Cristes maesse에서 유래하였다. X-mas라고 쓰는 경우의 X는 그리스어의 그리스도(크리스토스: ΧΡΙΣΤΟΣ)의 첫 글자이다. 프랑스에서는 노엘(Noel), 이탈리아에서는 나탈레(Natale), 독일에서는 바이나흐텐(Weihnachten)이라고 한다.

개관
일반적으로 성탄절, 크리스마스는 12월 25일이며 전날인 24일 밤을 크리스마스 이브(Christmas Eve)라고 한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하루를 전날의 일몰부터 다음날의 일몰까지로 쳤기 때문에 전야인 이브가 중시된 것으로 보인다. 신약성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만 탄생일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초기 기독교도들은 1월 1일, 1월 6일, 3월 27일에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였지만, 교회 차원에서 성탄절을 축하하지는 않았다. 성탄절이 12월 25일로 고정된 것은 교황 율리우스 1세(재위 337~352) 때이다. 이 시기에 로마 제국의 동방 지역에서는 1월 6일에 탄생을 기념했으나, 4세기 말이 되면서 점차 12월 25일을 탄생일로 받아들였다. 현재 러시아 정교회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 1월 7일에 성탄절을 맞고 있는데 이는 개정된 그레고리력에 따르지 않고 율리우스력에 따르기 때문이다. 율리우스력의 12월 25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월 7일이 된다.

내용
{성탄절(聖誕節)의 유래} 성탄절을 12월 25일에 지키게 된 것은 명확하지는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의 빛, 태양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가졌던 초기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정복당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natalis solis invicti)’과 같은 날에 기념하기를 원했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이날은 3~4세기에 로마에 보급된 미트라교(Mithraism)의 중요한 제일이기도 하였고 로마의 동지(冬至)이기도 했다. 또 12월 17일부터 24일까지는 사투르날리아(Sāturnālia)라고 불린 농경신 사투르누스에 대한 제사가 행해졌다. 이처럼 12월 25일 무렵에 행해지던 당시의 축제들이 성탄절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짐작된다.

도살한 가축의 고기도 많고 창고에는 수확한 곡물이 가득 찬 이 시기에 로마인들과 게르만인들은 성대한 축제를 베풀었다. 사람들은 태양의 힘을 약화시키고 겨울을 가져올 자연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서 공물을 바치고 불을 피웠다. 온 세상이 메마를 때 푸름을 유지하는 상록수는 영원한 생명의 상징으로서 장식되었다. 이처럼 성탄절은 로마와 게르만의 전통 관습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기념이 합쳐져서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성탄절(聖誕節)의 역사} 중세의 성탄절에서는 기독교 이전의 자연종교적 축제가 큰 제한 없이 이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곧 6세기부터 점차 기독교를 받아들인 게르만족들은 자신들의 전통인 율축제를 성탄절에 함께 행하였다. 영국의 왕당파와 영국교회는 즐거운 전통으로 성탄절을 축하했지만, 근엄한 청교도들은 기존의 성탄절을 향락적이라 하여 공격하였다. 이후에 장로파는 성탄절을 금지하는 법안을 가결하고자 시도했으며 이에 반대하는 폭동 때문에 성탄절을 인정하기도 했다.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영국에서 성탄절은 공휴일로 공적으로 기념되었다. 그러나 성탄절 하루만 휴일로 되었고, 이를 축하할 비용이 없는 사람들이 증가하여서 성탄절의 미래를 어둡게 보는 경우도 많았다. 19세기 중엽에 성탄절은 이웃사랑과 자선이 중시되고 과거의 축제 관습이 더해졌으며, 어린이를 중심으로 가족이 즐기는 날이 되었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산타클로스(Santa Claus), 크리스마스 카드가 도입되고 크리스마스 캐럴이 부활했다. 아울러 크리스마스 선물이나 크리스마스 정찬(디너)이 서민 가정에도 도입되었는데, 오늘날 서구에서 축하하는 성탄절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성탄절은 급속히 확대되어서 영국의 모든 국민들이 함께 축하하는 날로 성립되었다. 성탄절의 중심 행사인 미사는 초기부터 교회에서 한밤중에 행하여졌다.

한국의 성탄절 역사는 기독교의 전래로부터 시작된다. 천주교는 1700년대 후반에, 개신교는 1800년대 후반에 각각 전래되었는데, 이 당시부터 신자들은 성탄절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나 아직은 신자의 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전반에 미친 영향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20세기에 들어 한국에는 근대적 언론매체가 등장하였는데, 언론매체의 보도는 공론의 형성에 중요한 기여를 하게 된다. 독립신문(獨立新聞)이나 조선일보(朝鮮日報), 동아일보(東亞日報)를 비롯한 주요 일간지에서는 12월이 되면 성탄절을 중요한 축일로 소개하고 기독교인들의 행사도 비교적 상세하게 보도하였다. 이 당시 농촌에 거주하던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중요한 날이 아니었으나 도시의 비기독교인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유흥을 즐기는 날로 인식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마스 축하연이라는 이름 아래 도시 유흥가에서는 ‘토산(土産) 크리스마스’를 즐겼다.

이러한 성탄절 풍경은 해방 후에도 이어져서 이 즈음에 발행된 신문에 크리스마스 축하 파티에 대한 여러 광고가 실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성탄절은 해방 이후에 한국에서 더욱 중요해졌는데, 이에 성탄절을 공휴일로 정한 미군정의 정책과 이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은 이승만 정권도 성탄절의 정착에 큰 기여를 하였다. 중국과 일본에서 성탄절을 공휴일로 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서 한국 공휴일 정책의 특수한 면을 볼 수가 있다. 또 1945년 9월부터 1982년 1월까지 행해진 야간통행금지가 12월 24일 성탄절 이브에는 해제되었다는 사실도 성탄절을 한국인들이 특별한 날로 인식하는 데 기여하였다.

현재 성탄절은 종교와 상관없이 한국인 대부분에게 한 해를 마감하는 세시로 인식되고 있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가져다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은 어린이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12월이 되면 어김없이 길거리나 방송매체를 통해서 전달되며 이는 한 해가 저물어감을 알리는 중요한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렇게 성탄절이 중요한 세시의 하나로 정착하는 데에는 국가의 공휴일 정책과 기독교도의 증가, 일본에서 도입된 것으로 보이는 상업적 이익추구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孤兒들을 초대 慰勞 크리스마스 축하회 (朝鮮日報, 1947. 12. 21)
「크리스마스」로 오늘 관공서 휴무 (朝鮮日報, 1947. 12. 25)
크리스마스 전야에 야통금지 해제 (朝鮮日報, 1954. 12. 20)
크리스마스와 우리생활 (朝鮮日報, 1954. 12. 23)
색연필-요사이 관청이나 무슨 기관의 장(長)들 간에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는 것이 대유행 (朝鮮日報, 1954. 12. 25)
一事一言-불탄일과 크리스마스 (朝鮮日報, 1955. 5. 19)
크리스마스 연말 연시 밤의 금족 풀린다 (朝鮮日報, 1962. 12. 23)
전선엔 크리스마스 공세, 높이 20미터의 트리세워 (朝鮮日報, 1964. 12. 23)
혹서의 월남전선 혹한의 휴전선, 장병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냅시다 (朝鮮日報, 1965. 11. 3)
Die Familie (Ingeborg Weber-Kellermann, Insel Verlag, 1989)
브리태니커22 (한국브리태니커, 1994)
종교학대사전 (종교학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사전연구사, 1998)
한국세시풍속자료집성-신문·잡지 편 1876~1945 (국립민속박물관, 2003)
30년대 조선을 거닐다[12]-토산(土産) 크리스마스 (朝鮮日報, 2005. 12. 24)

국립민속박물 자료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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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20-12-06 21:28:22     ▷작성자 : ■신문위원회등록[신문]-SINCE-1999- OTOT - 오티오티
 

 소한 [小寒]
소한 小寒은 동지 冬至 와 대한 大寒 사이에 들며 음력 12월, 양력 1월 5일 무렵에 해당한다.
 동지 [冬至]
음력 동짓달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中冬至), 그믐 무렵에 들면 노동지(老冬至)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태양력인 동지에다가 태음력을 잇대어 태음태양력으로 세시풍속을 형성시켜 의미를 부여하였다.
 설날에 조상 의 묘소 에 절 하고 살펴 보는 예 (禮).
묘소가 잘 있는지 살펴보러 간다고 하여 성묘(省墓)·전묘(展墓)·상묘(上墓)·상분(上墳)·상총(上塚)·배분(拜墳)·배소례(拜掃禮)·소묘(掃墓)·전소례(展掃禮)라고도 한다. 또는 간단하게 묘소에서 차례를 지낸다고 하여 ‘산소차례’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대체로 묘제(墓祭) 또는 성묘의 의미로 통용되었다. 송시열(宋時烈)이 “성묘 때 처음에 재배하며, 다시 재배하고 물러서는 것은 예의가 더욱 갖추어진 것이다.”고 하였듯이, 조상에게 문안드리듯이 묘소에 절하고
 [大寒] 대한
대한(大寒)은 24절기 가운데 마지막 스물네 번째 절기로 ‘큰 추위’라는 뜻을 가진 절기이다. 대한은 음력 12월 섣달에 들며, 양력으로 1월 20일 무렵이다.
 [小寒] 소한
음력 12월의 절기인 소한小寒은 동지冬至와 대한大寒 사이에 들며 음력 12월, 양력 1월 5일 무렵에 해당한다. 소한은 해가 양력으로 바뀌고 처음 찾아오는 절기이다. 절기의 이름으로 볼 때, 소한은 ‘작은 추위’이고, 대한은 ‘큰 추위’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대한 무렵보다는 소한 무렵이 훨씬 더 춥다. 24절기는 중국을 중심으로 구분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난다.
 성탄절 [聖誕節]
한국의 성탄절 역사는 기독교의 전래로부터 시작된다. 천주교는 1700년대 후반에, 개신교는 1800년대 후반에 각각 전래되었는데, 이 당시부터 신자들은 성탄절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나 아직은 신자의 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전반에 미친 영향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冬至] 동지 정의
동지(冬至)는 태양이 적도 이남 23.5도의 동지선(남회귀선) 곧 황경(黃經) 270도의 위치에 있을 때이다. 그래서 양력 12월 22일이나 23일 무렵에 든다. 양력으로 동지가 음력 동짓달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中冬至), 그믐 무렵에 들면 노동지(老冬至)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태양력인 동지에다가 태음력을 잇대어 태음태양력으로 세시풍속을 형성시켜 의미를 부여하였다.
 [大雪] 대설
일년 중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절기인 대설은 시기적으로는 음력 11월, 양력으로는 12월 7일이나 8일 무렵에 해당하며 태양의 황경은 255도에 도달한 때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음력 10월에 드는 입동(立冬)과 소설, 음력 11월에 드는 대설과 동지 그리고 12월의 소한(小寒), 대한(大寒)까지를 겨울이라 여기지만, 서양에서는 추분(秋分) 이후 대설까지를 가을이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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