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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공간] 세월의 흔적 간직한 '잇다스페이스'

잇다스페이스 앞에 선 정창이 작가 [사진/조보희 기자]

잇다스페이스 앞에 선 정창이 작가 [사진/조보희 기자]

(인천=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인천 개항장에서 배다리 헌책방 골목으로 넘어가는 싸리재 고갯길. 이 길 끝의 후미진 골목 모퉁이에 낡은 벽돌 건물이 있다.

'새전과·표준학력고사, 중학전과·새산수완성'. 여기저기 구멍이 뚫린 나무 대문에 흰 페인트 글씨로 새겨진 추억의 단어가 건물의 나이를 짐작게 한다.

이 건물은 1920년대 소금창고로 출발했다. 당시 일본이 화약 제조 원료로 쓰기 위해 소래 염전에서 생산한 소금을 이곳에 보관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아픈 역사가 깃든 건물은 1940년대 한증막으로 쓰이다가 10년 뒤 서점 문조사에 자리를 내주었다.

대문에 글씨로 남아있는 '동양서림'은 문조사에 이어 1970년대 들어선 헌책방이다.

동양서림이 주로 취급했던 것은 동아전과, 표준전과 등 1970∼1980년대 인기를 구가한 초중고 참고서였다. 하지만 헌 책 수요 감소와 함께 서점은 1992년 문을 닫았다.

이후 20년간 쓰레기 창고로 방치됐던 이 공간을 되살린 것은 목공예 작가 정창이 씨다.

잇다스페이스 내부 전경 [사진/조보희 기자]

잇다스페이스 내부 전경 [사진/조보희 기자]

"작업장 겸 쇼룸으로 쓸 공간을 찾아 배다리 헌책방 골목과 신포동 주변을 배회했어요. 몇 달 며칠을 헤매다가 마음에 드는 곳이 없어 포기하고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문이 너무 예쁜 이 건물을 발견했죠. 순간 '바로 여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쓰레기가 나뒹굴던 이 건물에서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벽면을 타고 뻗어 나간 오동나무였다.

시멘트 바닥 틈새를 뚫고 나온 오동나무는 벽돌과 창틀을 타고 낡은 슬레이트 지붕 위로 가지를 뻗어 새싹을 틔우고 있었다.

그는 "생명체 하나 없을 것 같은 암울한 공간에서 숨 쉬고 있는 오동나무 한 그루를 보고 전율을 느꼈다"면서 "'내가 꼭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콘크리트 바닥 틈새를 뚫고 뻗은 오동나무 [사진/조보희 기자]

콘크리트 바닥 틈새를 뚫고 뻗은 오동나무 [사진/조보희 기자]

개인 작업공간으로 이곳을 찾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공간의 감성을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서울 금보성아트센터 금보성 관장의 도움으로 펀딩을 통해 자금을 모은 그는 최대한 원래 모습 그대로 공간을 되살리는 작업에 나섰다.

우선 쌓여있는 쓰레기를 치우니 1t 트럭 15대 분량이 나왔다.

쓰레기와 먼지를 걷어낸 뒤 패인 바닥의 시멘트를 메우고 부서져 날아간 슬레이트 지붕 조각을 찾아 채워 넣었다. 틀만 남은 창에는 유리를 끼워 넣었다.

오동나무가 틈새를 뚫고 나온 부분에는 시멘트를 걷어내고 자갈과 흙을 깔아줬다. 그렇게 6개월간 고된 공사를 거쳐 20년간 숨죽어 있던 이곳은 '잇다스페이스'라는 이름의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100년의 세월과 공간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문화와 사람을, 자연과 사람을 잇는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다.

잇다스페이스 내부 [사진/조보희 기자]

잇다스페이스 내부 [사진/조보희 기자]

낡은 대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켜켜이 쌓인 100년의 세월이 그대로 느껴진다. 부식된 벽돌은 여기저기 금 가고 깨져 있고, 슬레이트 지붕은 녹슬어 붉게 변했다.

한쪽 벽에는 1960년대 신문지를 붙였던 흔적도 남아있다. 벽면의 누런 태극기도, 종이 위에 써 붙인 붉은 금연 글씨도 옛 모습 그대로다.

낡은 벽돌과 잿빛 콘크리트 벽면에 전시된 작품들은 새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보통의 갤러리에서 느낄 수 없는 감성을 관람객에게 전해준다.

정씨가 이곳을 처음 발견했을 당시 가느다랗던 오동나무 줄기는 5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훨씬 두터워졌다. 사실 이 나무는 건물 밖 둥치가 잘려 나간 오동나무가 뿌리를 뻗어 건물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매년 4∼5월이 되면 어김없이 푸른 싹을 틔운다고 한다. 잘려 나간 오동나무의 생명력이 마치 이 공간의 생명력을 보여주는 듯하다.

옛 모습 그대로 벽에 걸려 있는 낡은 태극기 [사진/조보희 기자]

옛 모습 그대로 벽에 걸려 있는 낡은 태극기 [사진/조보희 기자]

이곳에서는 전시뿐만 아니라 콘서트, 공예 체험 수업, 도자기 만들기 수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린다.

소아암 어린이에게 가발을 지원해주는 모발 나눔 콘서트, 길고양이를 위해 동물협회에 수익금을 기부하는 자선 콘서트 등 나눔을 위한 행사도 종종 개최된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는 오페라 애호가 박상순 씨의 설명을 들으며 스크린 오페라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입소문을 타고 이곳을 찾는 이들이 점점 늘면서 2년 전에는 공간을 확장했다.

1960년대 자개 공방이었던 건너편 3층짜리 건물을 빌려 1∼2층은 공방, 3층은 갤러리로 쓰고 있다.

정씨는 "일반인들이 쉽게 다가가기 힘든 갤러리의 문턱을 낮추고 싶다"고 말했다.

별관 1층의 공방 [사진/조보희 기자]


hisunny@yna.co.kr

ㅡ[연합뉴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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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20-04-12 13:56:29     ▷작성자 : ■ SINCE-1999-신문-■ OTOT-오티오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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